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현대 조선의 탄생》 ─ 북한 정권 탄생 신화 재탕하기

최영준 40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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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은 국내외 뉴스를 검열했고, 일부 신문은 폐간시켰다. 국내 공산주의자들의 신문조차 검열했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다.

물론 박경순의 주장처럼 소련군은 미군과 달리 북한에서 자발적으로 건설된 인민위원회를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통제하는 것을 전제로 한 조처였다. 사실 일본인 행정기구를 이용하는 것보다 인민위원회를 인정하는 게 모양새도 더 좋고 안정적인 통치 방식이었다. 또 인민위원회 안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확고한 친소주의자들이었기에 소련군이 행정권을 인민위원회에 이양해도 실질적으로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소련군은 내부 구성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불리한 인민위원회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았다. 예컨대, 1945년 8월 24일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한 후 평안남도에서 민족주의자들이 우세하던 인민위원회 내부 구성이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대등하게 바뀌었다.

한편, 해방 전부터 소련은 한반도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했다. 스탈린은 한때 제정 러시아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확보했던 세력권을 되찾고자 했다. 그래서 해방 직후 신속하게 한반도 이북 지역을 점령했고, 소련의 이익을 보장해 줄 체제를 이식하고자 했다. 이는 스탈린이 1945년 여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지도자들과 나눈 대화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 전쟁[제2차세계대전]은 과거와는 다르다. 누구든 어떤 영토를 점령하면 그 곳에 자신의 사회체제를 심는다. 누구든 자기의 군대가 미치는 곳까지 자신의 고유한 체제를 이식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의 본질은 박경순 주장과는 달리 “전 세계 파쇼국가와 반파쇼국가(미국, 소련, 영국 등) 사이에 ‘판갈이’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 간의 충돌이었고, 전후 점령 정책은 그들 간의 세력권 재분할이었다. 한반도 이남에 미군이, 이북에 소련군이 점령한 것은 바로 그들 간의 세력권 재분할이었다.

신탁통치 논란으로 본 민족자결권

박경순은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사항인 신탁통치가 일정한 문제점이 있지만 “당시 정세에서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제출한 영구 또는 수십 년간에 달하는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소련과 김일성은 신탁통치를 ‘후견제’로 표현했지만, 미국이 말하는 신탁통치와 사실상 같은 의미였고, 결국 5년간 조선의 독립을 미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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