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현대 조선의 탄생》 ─ 북한 정권 탄생 신화 재탕하기

최영준 40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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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군 소련

《탄생》은 “소련군은 우리나라 민중들의 자주적 국가건설 활동을 보장하고 후원하는 역할을 담당”해 이북 정권 수립에 단순한 보조자였던 것처럼 묘사한다. 그렇다면 왜 후원자인 소련에 맞서 신의주·함흥 등 이북 여러 곳에서 거대한 반소 시위가 벌어졌을까?

박경순은 신의주·함흥 등에서 커다란 시위가 있었던 점은 인정하지만 “도당과 도 인민위원회의 일부 간부들이 적산 물자를 개인적으로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운 것”이 원인이었다며 개인적 일탈의 문제인 양 말한다.

하지만 1945년 11월 23일 벌어진 신의주 시위의 주요 요구 중 하나는 소련군 약탈 행위 규탄이었다. 신의주 시위 이후 공업 도시 함흥 등지로 반소 시위가 확산됐고, 함흥 시위에서는 처음부터 “소련 물러가라” 구호가 전면에 나왔다.

이남을 점령한 미군과 마찬가지로 소련군은 해방 이후 아래로부터 분출한 대중적 운동과 조직을 억눌렀다. 게다가 이북 지역에서 많은 쌀과 산업시설을 약탈했다. 한 보고에 따르면, 소련이 반출해 간 쌀이 1945년 254만 석, 1946년 290만 석이었다. 소련은 일본인 공장을 접수해 상품 생산과 수송을 직접 통제했고 함흥·원산·청진·성진 등 주요 산업 도시의 원료와 시설·설비를 약탈해 갔다.

이 때문에 소련군과 민중의 갈등은 소련군이 진주한 지역의 일반적 현상이었고, 북한 민중은 소련을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도 불만을 표했다. 특히 김일성이 장악한 보안기관 4 에 대한 민중의 적대감은 무척 컸고, 보안기관이 작성한 비밀 문건에도 “과거 일본 경관보다 더욱 심하다는 인민들의 비난을 받았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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