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현대 조선의 탄생》 ─ 북한 정권 탄생 신화 재탕하기

최영준 40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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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 심지어 38선 이남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 조선 동포가 숭모하고 고대하던 영웅 김일성 장군께서 그 름름한 융자를 한 번 나타내니 장내는 열광적 환호로 숨 막힐 듯 되고 전부가 너무 큰 감동 때문에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다.

하지만 소련군의 지원이 없었다면 김일성은 이날 집회에서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날 김일성은 소련군 사령관들과 함께 소련 훈장을 달고 나와 “소련 군대와 스탈린 원수 만세”를 외치며 소련군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과시했다.

훗날 북한 당국은 당일 집회 사진에서 소련군 사령관들을 지워 없애고 김일성만 남겨 뒀다. 김일성이 소련의 지원과 정책적 영향 없이 북한 민중의 전폭적 지지 속에 독자적으로 정권을 수립한 ‘자주적’ 인물임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김일성 가슴에 달린 소련 훈장도 모두 없애 버렸다. 《탄생》에는 북한 당국이 조작한 사진만 실려 있다.

해방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이남 지역에서 강력했고, 이북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나마 일제 시대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함경도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해방 직후 인민위원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소련군이 진주하기 전까지) 평양이 있는 평안도 일대에서는 조만식 등의 민족주의자들이 주도권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북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소련군의 지원으로 급속히 권력의 요직을 차지했고, 이들 가운데 김일성은 소련의 특별한 지원을 등에 업고 단 몇 개월 만에 북한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소련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잘 알지 못하는 국내 공산주의자들보다 수년간 소련 극동군 25군 88특별여단에서 훈련받은 소련군 대위 김일성이 훨씬 미더웠을 것이다.

소련 제25군 군사회의 군사정치위원이었던 레베데프는 “김일성 대위를 장차 조선의 주요 지도자들 중 한 사람으로 꼽아 입북시킨 것은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국내에 기반이 취약했던 김일성이 귀국 후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소련 점령 당국의 적극적인 후원 덕분이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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