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현대 조선의 탄생》 ─ 북한 정권 탄생 신화 재탕하기

최영준 40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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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3월 이북에서의 전면적 토지개혁은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이른바 “인민민주주의 개혁”을 통해 소련과 흡사한 사회·경제적 구조가 북한에서 본격화한 것이다.

토지개혁은 친일파와 조선인 지주의 토지를 무상몰수해 농민들에게 무상분배하는 방식으로 20여 일 만에 신속히 완료했다. 당시 토지개혁은 급속한 공업화를 위해 농업으로부터 잉여를 추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 도시 노동자들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토지개혁으로 농민들은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됐지만 토지 매매, 저당, 임대차는 할 수 없었고 높은 현물세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다. 현물세는 각종 곡물 수확고의 25퍼센트, 알곡 수확고의 27퍼센트에 이르렀다. 이것은 남한 농민의 세 부담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농민들은 현물세가 일제 하의 공출과 무슨 차이가 있냐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탄생》은 “농민들은 기쁨에 겨워 울먹였으며 토지개혁을 이끈 김일성 위원장에게 수없이 많은 감사편지를 보냈”고 “토지개혁에 감격한 농민들은 수많은 쌀을 나라에 바치는 애국미 헌납운동을 벌였다. 당과 정부의 은덕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시작한 애국운동이었다”며 상황을 왜곡했다.

주요 산업 국유화도 시행됐다. “당시 공업 부문 자산의 90퍼센트를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었고 특히 주요 기간산업은 거의 일본인 소유였다. 따라서 산업의 국유화는 토지개혁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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