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사회주의 고전 읽기] 《프랑스 내전》 ─ 최초의 노동자 권력, 파리 코뮌

김지윤 179 38
388 7 5
6/9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피로 물든 파리

코뮌의 성과는 눈부셨지만 더 많은 것들을 이루기엔 수명이 짧았다. 당시 코뮌 지지자들은 파리 바깥에서 낡은 국가 기구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호시탐탐 그들을 노리고 있고, 자신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임을 간과했다.

코뮌이 파리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 힘을 쏟는 동안 파리의 바깥에서는 티에르와 공화정이 코뮌을 분쇄할 군대를 모으고 있었다. 티에르는 프로이센의 도움까지 얻었다. 두 국가의 지배자들은 얼마 전까지는 서로 총을 겨눴지만, 코뮌 분쇄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협력했다.

마르크스는 지배계급의 계급적 본능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낡은 세계는 시청 위에서 나부끼는 노동의 공화국의 상징인 붉은 깃발을 보고 분노의 경련을 일으켰” 15 고, “국민 정부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 하나가 된다!” 16 이 자들은 “법”과 “문명”을 앞세우지만 자신들의 지배에 대한 도전을 결코 허용하지 않으며, 야만과 광폭함으로 얼마든지 맞선다.

1871년 5월 21일 “티에르와 피에 굶주린 그의 사냥개들”이 파리로 진격했고, 무자비한 학살을 벌였다. “외국 침략자의 비호 하에 수행된 내전을 통하여 혁명을 진압”하려는 지배계급의 음모는 파리의 대량 학살로 절정에 다다랐다. 17 베르사유 군대는 코뮌 편에 선 사람이면 누구든 목숨을 빼앗았다. 영국 신문 <타임스>는 이렇게 논평했다. “베르사유 군대는 죄수들, 여성들, 아이들을 총살하고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온몸을 찢어 갈렸다. 우리 기억에 역사상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리 노동자들은 끝까지 결연하게 저항했다. 여성들도 투쟁에 나섰다. “코뮌은 당시의 시대적 편견 때문에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지만 노동계급의 여성들은 코뮌 탄압이 바로 자신들에 대한 탄압이라는 것을 알았다.” 18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