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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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고전 읽기] 《프랑스 내전》 ─ 최초의 노동자 권력, 파리 코뮌

김지윤 179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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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내전》은 마르크스가 1871년 5월 30일 파리 코뮌의 마지막 순간에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제1인터내셔널)의 위임을 받아 발표한 연설문을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은 파리 코뮌에 대한 열렬한 옹호이자,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다. 파리 코뮌의 위대한 역사를 간결하지만 강렬하고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지배계급의 비열함과 추악함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무장한 도시

1851년 공화정이 무너진 이후 프랑스 자본주의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근대 공업이 성장하면서 산업 생산은 두 배로 증가했고, 가내 수공업 노동자들을 공장 노동자들처럼 취급한 선대제 자본가들의 재래식 수공업에 대한 통제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 5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했다. 투기 열풍 속에 손해를 입은 일부 부르주아지는 정부에 반감을 품었고, 프랑스가 멕시코에서 벌인 군사적 모험도 실패로 끝났다. 파리 노동자들은 임금보다 생계비가 더 빨리 오르고 있었다. 파리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하루 11시간을 일하는데도 “극빈 상태에 가까운 빈곤”에 처해 있었다. 1869년 공화파 야당이 파리를 비롯한 여러 대도시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자 1870년에 루이 보나파르트는 비스마르크의 프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프랑스군은 참패했고, 루이 보나파르트는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권력은 부르주아 공화파 야당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프로이센 군대가 파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선포됐지만, 부르주아 정부는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았다. 공화파가 내세운 ‘자유, 평등, 우애’는 대다수 노동계급의 삶에서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프랑스 노동계급은 전쟁과 기아에 시달렸다. 당시 파리 인구의 다수는 성장하는 노동계급과 상당 규모의 실업자들이었다. 파리 시민 약 60퍼센트가 자신의 장례식 비용도 감당 못할 정도로 끔찍하게 가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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