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국제사회주의자들의 기원》 서문

던컨 핼러스 88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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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는 이런 “조건부 방어론”을 손쉽게 논박했다. 독소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고 그에 따라 스탈린이 히틀러의 용인 속에서 주변국 영토를 점령한 것은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더 거대한 쟁투 속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1940년에 소련에 맞서 핀란드를 지지할 수는 없었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맞서 세르비아를 지지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레닌이 주장했듯이 세르비아 측의 명분은 맥락에서 떼어 놓고 보면 진보적이었다(민족 자결권이라는 근거에서). 그러나 당시에는 사태를 그렇게 떼어 놓고 볼 수 없었다. 194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과 프랑스가 핀란드의 배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논쟁이 중요한 것은 샥트먼이 아니라 트로츠키의 주장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반대파가 자신의 소련 성격 분석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감지했고(실제로 이들은 사회주의노동자당과 결별한 이후 그렇게 됐다), 그래서 좌파들과의 차이를 짚으며 두 가지 새로운 주장을 제시했다.

제4인터내셔널은 노동자들의 혁명적 봉기를 통해 관료를 전복할 필요성을 오래 전에 인정했다. 관료가 새로운 착취 계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제시한 것이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관료를 전복하면, 소비에트의 지배를 재확립하고 거기에서 현재의 관료들을 솎아낸다는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좌파적 비판자들은 그 외 다른 목표를 제시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 우리는 미래의 혁명을 정치 혁명으로 부른다. 몇몇 반대자들(실리가, 브루노 등)은 미래의 혁명을 한사코 사회 혁명으로 부르고 싶어한다. 그런 규정을 수용한다고 해 보자. 본질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우리가 열거한 혁명의 과제에서 추가되는 것은 전혀 없다. 20

그렇다면 이 차이는 그저 용어상 차이일 뿐 내용적 차이는 아닌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용적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좌파적 입장의 논리는 사회주의가 의제에 올라 있지 않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고 트로츠키는 주장했다.

소련 문제는 우리 시대의 전체 역사적 과정과 별개인 것으로 분리할 수 없다. 스탈린의 국가는 과도적 형태, 즉 후진적이고 고립된 나라의 기형화한 노동자 국가이거나,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를 대체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 형태(스탈린주의, 파시즘, 뉴딜 등)인 “관료 집산주의”(브루노 리치, 《세계의 관료화》, 1939년 파리) 둘 중 하나여야만 한다. 후자의 입장을 채택하는 것은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잠재력이 모두 고갈됐고, 사회주의 운동이 파산했으며, 기존 자본주의가 새로운 착취 계급이 지배하는 “관료적 집산제”로 변모하고 있다고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인정하는 것이다. 21

이런 잘못된 주장은 이후 논쟁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이 주장은 전혀 마르크스주의적이지 않다. 마르크스는 서로 다른 두 사회 체제(고대 노예제와 아시아적 생산양식)가 수세기 동안 공존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부르주아 논자들의 주장과 달리 마르크스는 “보편적 단계” 개념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세계 체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상당한 변형들이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이것은 소련의 계급적 성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미 트로츠키 자신이 불균등 결합 발전의 효과로 온갖 혼성적인 사회 형태가 생겨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관료적 집산제 주장은 간단히 말해 본질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훗날 크게 수정된 형태로 샥트먼 그룹의 입장으로 채택됐는데, 이 경향은 끝내 일관된 입장에 이르지 못하고 동요하다가 결국 우경화했다.

제2차세계대전 말(1944~1945년), 스탈린의 후원 하에 동유럽과 북한에서 “인민민주주의” 국가가 수립됐다. 반혁명적이고 자본주의로 회귀하고자 하는 보나파르트 관료에 의해 노동자 국가들(변질됐든 기형적이든)이 수립된 것일까? 제4인터내셔널을 주도하던 그룹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런 국가들이 노동자 국가라는 주장은 최악의 수정주의며 스탈린주의에 투항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948년 제4인터내셔널 제2차 세계대회는 소련이 타락한 노동자 국가고 북한 등 “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라는 입장을 엄숙하게 재확인했다. “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이 노동자 국가라거나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이단자들에 관해서도, 두 수정주의 경향의 유사성이 두드러지며 혁명 운동 안에는 이들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고 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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