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반혁명의 유령들

알렉스 캘리니코스 5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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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지원으로는 이집트 경제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하라는 이집트 국내외 자본의 요구와 2011년 1월 25일 이래로 대중의 몸에 밴 행동 사이의 모순을 해소할 수 없다. 1월 30일[“6월 30일”을 잘못 쓴 듯하다] 시위의 의의 하나는 행동이 지리적으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혁명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농촌에서 무르시의 경제 정책에 분노한 많은 사람들을 행동에 끌어들였다.

군부는 국가의 탄압 능력을 재건하려 한다. 무바라크에 맞선 항쟁으로 산산조각난 경찰과 정보 기관들을 소생시키고 비밀경찰을 주지사 자리에 앉히려 한다.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탄압이 남긴 선례와, 9월에 연장된 국가비상사태 하에서 정권이 휘두를 예외적 권력은 잠재적으로 혁명 운동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적대감 때문에 무슬림형제단이 고립되기는 했어도 군부가 (대개 도시에서 징집한) 병력으로 직접 도시 대중 운동을 분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폴레옹이 말했듯 총검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 위에 앉을 수는 없다. 그래서 강제뿐 아니라 동의도 필요하다는 점은 이집트독립노조연맹 위원장인 카말 아부-에이타를 노동부 장관에 임명한 것에 반영돼 있다. 아부-에이타가 군사 정권에 입각하는 수치스런 결정을 한 것은 나세르주의 정치의 반영이다. 그러나 이것은 1월 25일 이전까지는 독립노조가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노동조합 관료가 놀랍도록 빨리 자라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종류의 조처들로 노동자 운동을 단속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새 정부가 수립하자마자 섬유 노동자들의 파업 물결이 몰아쳤다. 파업 노동자들은 요구를 대체로 쟁취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쿠데타가 가져온 후퇴의 의미를 약화시키지는 못한다. 군부는 혁명 운동에 균열을 내는 데에 (적어도 당분간은) 성공했다. 그러나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최초로 항쟁이 분출한 이래 우리가 거듭 강조했듯이 혁명은 하나의 과정이지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혁명은 진퇴를 거듭하며, 대중의 의식과 자주적 조직이 전진하기도 하고, 반혁명 세력이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8 이런 측면들이 6월 30일 이집트에서 벌어진 상황에 혼재해 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럽지만,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다.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을 한 번씩 경험해 본 대중은 후자를 거부하면서 전자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깨려면 노동자 운동이 크게 발전하고, 착취받고 천대받는 광범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정치적 좌파가 크게 성장해야 한다. 판돈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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