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이집트 혁명에 대한 개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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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에게는 후퇴고, 혁명의 에너지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혁명 3년차에 들어 무슬림형제단과 군부는 변형된 신자유주의 어젠다를 추진하고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강하게 압박해 이집트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데 힘을 합치겠다고 잠정 합의한 듯하다. 2012년 10월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노동운동을 기습 공격했는데, 카이로 버스 운전사들이 “반역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며 파업이 “불법”이고 “범죄”라고 주장한 것이다. 109 정부 관료들은 집단 행동을 억제할 새 노동법을 마련했는데, 무르시가 IMF와 협상을 하면 분명 수천만 명에게 영향을 미칠 긴축 조처를 취하게 될 것이고 그에 대한 반발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슬림형제단과 군최고평의회는 조심하는 중이다. 대중 운동의 강점이 무엇인지, 직접 나서 운동을 저지하는 데 따르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성을 약화시키고 고립시킬 방안을 모색 중이다. 국가의 형태를 띤 이집트 자본이 결국 대중 운동과 직접 맞붙을 것임은 확실하다. 여기에는 군부 엘리트와 민간 자본이 모두 포함될 것인데, 이 둘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 2011년 1월 이후의 사건들을 보면 이들 모두 내부적으로 분화하는 중임을 알 수 있고, 이들 간의 경쟁하는 이해관계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제각기 반응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국가도 약점이 있다. 여태껏 군부가 대중 운동을 공격하는 데 징집병을 투입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하다. 그와 동시에, 거리 행동만으로는, 또는 선거 운동이나 지역사회 운동에 열중하는 것만으로는 급진적 사회 변화를 확대하지 못할 것이다. 조만간 작업장의 정치적 의지가 시험대에 오를 것인데, 이집트 노동자들이 계급의 이익을 스스로 표현하는 조직 형태를 발전시켰는지가 결정적일 것이다.

혁명적 활동가들에게는 시급한 과제들이 있는데, 바로 노동자 조직을 굳건히 하고 노동자 투쟁을 일반화하는 것, 작업장 투사들과 새로운 좌파 사이에 유기적 연결 고리를 발전시키는 것, 노동자 운동을 제약하는 ─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 개혁주의 조류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혁주의의 영향력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더욱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단결된 행동을 더 많이 하면서도,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노동자 권력,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위한 투쟁 같은 사상을 전파하는 주장을 더 많이 해야 한다. 110

이브라힘 엘후다이비는 전에 무슬림형제단의 회원이었고, 혁명적 활동가이기도 한 이슬람주의자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집트 국가는 노동계급을 희생시키고 기업인과 고위 관료들의 이익을 위하는 쪽으로 완전히 치우쳐 있다. … 시위대의 요구는 날마다 대중의 삶에 와 닿는 진실한 사회적 불만에 바탕을 두고 있다.” 후다이비는 다수의 의지를 강제할 “진정한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11 집단적 행동이 계속되면서 후다이비 같은 사람들 수백만 명의 의식이 변화하고 있으며, 수 세대 동안 이집트 정치를 지배했던 전통들을 재평가하는 중이다. 관건은 새로운 투사들이 밟을 정치적 궤적이 무엇일지, 그들이 더 광범한 운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후기

2012년 11월 말 혁명은 더욱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으로 촉발됐는데, 무르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를 중재하려 했다. 양측이 휴전 협상을 하면서 무르시는 국제적으로 ─ 특히 미국으로부터 ─ 칭찬을 받았지만, 이집트 국내에서는 무르시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지 않고 특히 가자 지구 국경 개방을 거부한 것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무슬림형제단의 최고위 인사인 무함마드 바디에는 회담 결과를 비난하고, 무슬림들이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킬 지하드[성전]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적들은 힘의 언어밖에 모른다”면서 “저들이 평화협정이라고 포장하는 거대한 사기극을 경계하라” 하고 말했다. 112 [무슬림형제단의 최고위 인사가] 무르시를 이토록 노골적으로 질책한 것은, 팔레스타인을 두고 이슬람주의 운동 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무르시의 국내 정책에 대한 동요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음이 반영된 것이었다.

무르시는 자신의 권위를 확고히 하고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무슬림형제단을 결속시키려고 판돈을 키웠다. 대통령의 결정은 어떠한 사법적 권한으로도 뒤집힐 수 없으며, 이집트의 제헌의회와 슈라위원회(상원) 또한 사법기관이 임의로 해산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조처들은 쿠데타이자 대통령에게 “파라오”의 권력을 안겨 주려는 시도로 여겨졌다.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나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을 비난했다. 급진적 활동가들은 2011년 1~2월의 “18일” 동안 나왔던 “대중은 정권의 몰락을 원한다”와 “퇴진하라” 같은 구호를 다시 꺼내들었고, “제2의 혁명[을 일으켜라 — 마플릿]” 같은 구호도 시위에서 울려퍼졌다. 113 무르시가 이슬람주의자들에 유리한 새 헌법을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갑작스럽게 발표하자, 약 75만 명이 카이로의 대통령궁으로 행진했고, 주요 산업 중심지 마할라알쿠브라 를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무슬림형제단은 자신들의 권위가 위태로워지자 상이집트[나일강 상류 지역] 전역에서 지지자들을 버스에 태워 카이로에서 열린 집회에 동원했고, 회원들로 이뤄진 파견대가 반무르시 시위대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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