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필요하다면 자본주의는 형식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도 파괴할 것이다. 1930년대 나치 독일이나 1973년 칠레 쿠데타 등이 그런 경우다.
그렇다고 룩셈부르크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가치 없다는 식의 초좌파적 주장을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물을 놓지만,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에게 필수적이라고 봤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 사회를 변혁시키는 출발점이면서 원칙으로 사용하게 될 정치 형태들(자치, 선거권 등)을 민주주의가 창출해 내기 때문이다.”
룩셈부르크가 국가의 구실 확대를 지적한 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국가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그 활동 영역을 확대시켰고, 국가에 새로운 기능(특히 경제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항상 부과했으며, 사회에 대한 개입과 통제를 더욱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복지의 발전도 그 한 측면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이해와 사회 발전이 일반적으로는 지배계급의 이해와 대체로 충돌하기 때문에 국가는 사회 발전에 필요한 기능들을 떠맡는다.” 복지국가라는 것을 거의 상상조차 하지 못할 때 쓰인 이 글은, 개혁주의자들이 복지국가의 탄생을 사회주의의 도래로 환영한 것이 얼마나 잘못인지를 보여 준다.
개혁주의자들은 개혁을 일면적으로(사회주의라는 작은 섬) 이해하지만, 룩셈부르크는 초좌파주의라는 반대편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룩셈부르크의 방법은 철저하게 변증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