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적 사회주의

김인식 37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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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슈타인이 수정주의를 제기한 배경에는 당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 독일 자본주의의 성장,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회복이 있었다.

1880년대부터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식민지 쟁탈전에 들어갔다. 독일은 단기간에 후진 농업국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부상했다. 두 가지 자본 축적 형태(카르텔의 형성, 금융 제도의 발달)가 독일 자본주의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것들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성격을 띠었다. 독일 자본주의에는 세계 무대가 필요했다. 독일은 세계 무대에 벌어지는 경제적 경쟁을 군사력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군비를 급격히 확충됐다.

한편, 국제 사회주의 운동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파리 코뮌의 패배와 뒤이은 혼란의 시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미숙련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신노동조합 운동이 떠올랐다. 1889년 파리에서 제2인터내셔널이 창립됐다.

독일 사민당에는 모순이 있었다. 국가 탄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급진적 야당의 성격을 유지해야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독일 사민당은 정치적 행동에서 급진적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원칙에서는 근본적으로 개혁주의적이었다. 그래서 노동조합 운동의 기회주의적 변종들과 선거 득표에 대한 집착이 당 기구들에 만연했다. 베른슈타인이 발전시킨 접근법에는 이런 관료적 보수주의가 반영돼 있었다.

베른슈타인은 마르크스주의적 국제주의를 배격하고 독일 민족의 영예로운 임무를 옹호했고, “문명화된 민족이 미개한 민족의 후견인으로 행동할 필요성”을 인정했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구닥다리”라고 비판했다. 요컨대, 베른슈타인은 이질적인 계급의 정치를 노동계급의 정치 무대에 주입하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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