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적 사회주의

김인식 37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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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의 국제주의는 유럽 나라들에 국한되지 않았다. 룩셈부르크는 일찌감치 유럽의 식민주의를 적극 반대했다. 1904년 독일령 서남부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헤레로족 봉기에 대한 야만적 탄압 등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 전쟁을 반대했다. 헤레로족을 전멸시킨 독일의 전쟁은 20세기 최초의 집단 학살로 일컬어진다. 또, 룩셈부르크는 식민 원정을 비난할 뿐 아니라 식민지 사람들의 저항과 투쟁을 옹호한 사회주의자였다.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중요한 경제 저작인 《자본의 축적》7에서 제국주의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죄르지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1923년)에서 《자본의 축적》이 변증법적 접근의 핵심 범주인 전체성을 아주 잘 보여 주는 빼어난 사례라고 말했다.

변증법적 전체성은 추상적 개념이나 공허한 보편성이나 구별되지 않은 존재들의 복합체가 아니다. 룩셈부르크는 국제 프롤레타리아가 각자의 문화·언어·역사를 지닌 인간들의 집단들로 이뤄져 있음을 잘 이해했다. 그런 인간들의 생활·노동 조건은 매우 상이했다. 《자본의 축적》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과 플렌테이션에서 일어나는 강요된 노동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이런 곳들은 독일 공장들과 같지 않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이 공동 행동의 장애물로 이해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룩셈부르크에게 국제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처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뜻했다 — 공동의 적인 자본주의 체제, 제국주의, 제국주의 전쟁들에 맞선 만국 노동자의 단결.

또, 룩셈부르크는 세계적 규모로 이뤄지는 자본주의적 축적이 단지 초기 국면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폭력적 착취의 항구적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적 과정으로서 자본 축적은 항구적 무기로서 군대를 사용한다. 단지 초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팽창이 아주 다양한 세계 인구와 문화에 충격을 줬다고 룩셈부르크는 지적했다. 영국 농민과 장인들의 말살,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살, 유럽 열강들에 의한 아프리카인들의 노예화, 미국 중서부와 서부 지역 소농들의 파멸, 프랑스 식민주의의 알제리 공격, 영국 식민주의의 인도 공격, 아편 전쟁이라고 불린 영국의 중국 급습, 영국 식민주의의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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