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적 사회주의

김인식 37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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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잘못됐다. 무엇보다, 노동조합 관료 집단은 특수한 이해관계와 지위 때문에 사민당이 혁명적 길로 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이 점은 1918∼1923년 독일 혁명 동안 입증됐다. 둘째, 룩셈부르크는 노동자 대중에 대한 개혁주의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 노동자 대중이 투쟁의 경험을 통해 과거의 모든 장애물들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의식은 훨씬 불균등하다. 따라서 혁명적 대안은 혁명적 소수로부터 조직돼야 한다. 레닌주의 노선에 따른 전위 정당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런 약점이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1890년대 독일에서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는 이론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개혁과 혁명 사이의 관계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분석은, 노동계급의 일상적 투쟁의 내용과 성격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부여해 준 실제적인 결론을 이끌어냈다. 룩셈부르크는 노동운동의 주류에 초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에 반대했다. 종파주의에 맞선 룩셈부르크의 투쟁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안착돼 가는 한국의 노동운동에서 특히 중요하다. 개혁주의로부터 도피하지 않으면서도 개혁주의에 맞서 원칙 있게 투쟁한 룩셈부르크에게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국제주의와 혁명적 반제국주의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적 국제주의 강령에 헌신한 혁명가였다. 룩셈부르크는 유대인이고 폴란드인이고 독일인이었지만, 그의 하나밖에 없는 “조국”은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이었다. 그러나 이런 급진적 국제주의 때문에 룩셈부르크가 민족 문제에 관해 부적절한 입장을 취했던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룩셈부르크는 피우수트스키가 이끄는 폴란드 사회당의 “사회애국자들”이 제기한 폴란드 민족 독립 요구에 반대했을 뿐 아니라 볼셰비키의 폴란드 민족자결권(러시아로부터의 분리를 포함한) 지지도 거부했다.

그러나 우리는 룩셈부르크의 국제주의에 있는 긍정적 측면을 놓쳐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개념에 투철하고, 민족주의·국수주의 이데올로기에 투항하지 않고 완강하게 거부한 것은 룩셈부르크의 뛰어난 기여였다.

룩셈부르크가 독일 사민당에 입당한 것도 자본주의 체제, 제국주의,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선 만국 노동자의 단결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룩셈부르크는 군국주의, 군사 공채, 해외 군사 원정 등에 대한 타협을 일절 거부했다. 볼프강 하이네 같은 사민당 우파들은 이런 문제들에서 카이저 정부와 기꺼이 협상하고자 했다. 룩셈부르크는 “일자리 창출 필요성”이라는 미명으로 정당화된 그런 투항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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