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8호 2021년 3~4월호)

지난 호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적 사회주의

김인식 37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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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로자가 사라졌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해서,
그래서 부자가 그녀를 죽였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비문(碑文, 1929년)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그람시와 함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전통에 있는 위대한 혁명가다.

그런데 자발성을 강조하고 조직을 평가절하했다는 스탈린주의자들의 주장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의 찬양을 받는 불행을 당하기도 한다. 가령, 소종파 스탈린주의 그룹은 한국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위대한 혁명가’ 룩셈부르크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있다고 비난한다.1 이들은 자기 선조의 역사를 모르는 게 틀림없다. 1931년에 스탈린은 사후적으로 룩셈부르크를 트로츠키주의라고 비난했다. 룩셈부르크가 1905년 러시아 혁명에서 연속혁명 개념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2

반면, 룩셈부르크 덕분에 스탈린주의적 오류를 겪지 않았다고 말하는 장석준은 룩셈부르크가 선거 참여를 통한 사회 변혁을 주장했다고 시사한다.3 1918년 말 독일공산당에서 벌어진 제헌의회 선거 참여 여부 논쟁 때 룩셈부르크가 선거 참여를 지지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것은 룩셈부르크가 독일공산당 내 초좌파들과 벌인 선거 전술 논쟁이었는데, 룩셈부르크가 선거주의적 사회 변혁 전략을 주장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왜곡이다. 룩셈부르크는 의회주의 전략에 분명히 반대하고 소비에트와 노동자 권력을 지지했다.

다시 말해, 룩셈부르크는 혁명적 사회주의, 국제주의,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전통에 서 있다.

룩셈부르크는 1871년 독일과 러시아의 지배로 분할된 폴란드의 소도시 자모시치에서 태어났다. 룩셈부르크는 독일에 오래 거주하며 폴란드와 독일의 노동운동에서 활동했다. 이 독특한 이력 덕에 룩셈부르크는 혁명적 행동의 정신(‘러시아’ 정신)과 노동자 자립·민주주의·자력 해방의 정신(‘서구’ 정신)을 결합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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