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프리드리히 엥겔스

토니 클리프 12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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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이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가 필연적이라면 팔짱 끼고 앉아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회주의가 온다니까!” 뭔가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역사로 가는 문을 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역사가 알아서 올 것이다. 역으로 파시즘의 승리가 필연적이라면 아마 팔짱 끼고 앉아 있지는 않겠지만,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숨어서 울고 있을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내가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엥겔스는 역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식화한다. 인간이 하는 것이 역사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쳐들어간 것은 프랑스 역사가 아니라 그곳을 습격한 남녀들이다. 역사가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러시아 노동자들과 병사들이 러시아 혁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이 역사유물론의 의미다.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지만 인간은 자신에게서 독립돼 있는 조건들 속에서 그렇게 한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영어로 말하고 있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어를 만들어 내지 않았다. 내가 영어를 조금 비틀지는 몰라도 영어는 나에게서 독립적이다. [그러나]지금 영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언어가, 어떤 신비로운 존재가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서툰 영어일지언정 여러분에게 연설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능동적 주체의 일부인 나다. 이 점이 엥겔스의 정식에서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마르크스를 엥겔스와 대립되는 인물로 그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이론을 실천에서 분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다른 시기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 스탈린과 트로츠키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동안, 그리고 스탈린이 살아 있는 동안, 공산주의 운동은 대체로 스탈린을 지지했다. 스탈린이 감기에 걸려 재채기라도 하면 국제 공산주의 운동이 손수건을 꺼내드는 지경이었다. 스탈린 사후에 그의 진정한 실체가 드러나자 그 똑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결심했다. “트로츠키가 스탈린에 맞서 싸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트로츠키와 한편이 될 수는 없다. 스탈린주의자가 아니지만 트로츠키주의자도 아닌 누군가를 찾아야만 한다!” 유심히 주변을 둘러보던 이들은 운 좋게도 누군가를 찾아낸다. 이탈리아 감옥에 갇혔던 한 사람을 찾아낸 것이다. 감옥에 갇혀 있던 그는 당연히 일상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이 바로 그람시다. 이들은 그람시를 따라야 할 모범으로 떠받들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스탈린주의자도, 트로츠키주의자도 아니다! 그람시주의자다!”

이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다. 마르크스를 공격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이의 차이점을 찾기 시작했다. 엥겔스가 행동가임을 눈치챈 이들은 마르크스는 그렇지 않았다고, 마르크스는 이론가였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에 동의한다고 말하지만 이들의 세계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론》 3권에 나오는, 잉여가치가 평균이윤율로 전형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과 같다. 이들은 투쟁보다는 산술과 수학에 훨씬 더 관심을 보인다. 이것이 그들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구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같은 땅콩 껍질에 든 두 땅콩과도 같다. 사상적으로 이 둘을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서로에게 사상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어떤 분야에서는 엥겔스가 마르크스와는 별개로 걸출한 기여를 했다. 1884년에 (즉 마르크스가 죽고 일 년 뒤에)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보자. 이 책은 탁월한 기여였다. 새로운 주제를 탐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모건 등이 연구한 인류학을 활용했다. 엥겔스는 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서 단순한 질문들을 던진다. 개인 관계는 [뭔가]? 가족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그러한 관계는 영원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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