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프리드리히 엥겔스

토니 클리프 12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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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스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살펴보겠다. 다들 알다시피 《공산당 선언》의 표지에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이라고 돼 있지만 실제로 이 책을 쓴 사람은 마르크스였다. 그러나 이 책의 초안은 엥겔스가 썼다. 《공산주의의 원리》가 그것이다. 두 원고를 비교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다. 《공산주의의 원리》에는 《공산당 선언》이 다루지 않는 여러 물음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의 원리》에만 나오는 물음이 하나 있다.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가능할까? 이것은 80~90년 뒤 스탈린과 트로츠키 사이에서 피바다가 열리게 한 질문이었다. 엥겔스는 이 질문을 던지고는 이렇게 답한다. ‘당연히 불가능하다. 세계는 국제 경제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등등. 《공산주의의 원리》를 살펴보면 엥겔스의 공헌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공산당 선언》에 포함된 모든 사상들은 《공산주의의 원리》에 이미, 거창하지는 않지만 매우 분명하고 간결한 문체로 담겨 있다. 마르크스는 마치 환상적인 거대 벽화를 그리는 듯하다. 엥겔스는 작은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그러나 기본적 아이디어는 거기에 모두 담겨 있다.

다른 몇 가지를 더 살펴보겠다. 연속혁명 문제를 보자. 다들 트로츠키가 연속혁명론을 창시하고 가르쳤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물론 사실이다. 훨씬 이전인 1848년에 엥겔스가 연속혁명에 관해 썼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엥겔스는 무엇보다도 부르주아지가 겁쟁이들이며, 동쪽으로 갈수록 더 겁쟁이들이라고 썼다. 영국 부르주아지는 왕의 목을 자를 만큼 대담했다. 프랑스 부르주아지도 왕의 목을 베어버릴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왜 동쪽에 있는 부르주아지일수록 더 겁쟁이였던 것일까? 더 뒤늦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산업이 나중에 발전한 탓이다. 자본주의 생산은 이제 대규모 생산 단위의 형태로 조직됐고 강력한 노동계급이 형성됐다. 19세기의 부르주아지는 이 새로운 계급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17세기 영국 부르주아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지 않았다. “우리가 혁명을 일으키면, 프롤레타리아도 우리에 맞서 들고 일어서지 않을까?” 당시에는 프롤레타리아가 봉기할 위험이 존재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이지 않았다. 식량과 물가를 둘러싼 소요는 존재했지만 공장에 집중된 노동계급은 존재하지 않았다.

엥겔스는 부르주아지에 대해 이렇게 썼다. “너희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잠깐 동안의 지배일 것이다. 너희는 법을 정할 것이고, 너희가 세운 왕의 은총을 누리고, 넓은 궁전에서 연회를 즐기고, 왕의 딸에게 구혼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교수형 집행인의 발이 문지방을 넘고 있다.” 연속혁명이 무엇인지를 멋들어지게 설명했다. 19세기에 부르주아지는 봉건 체제에 맞서 부르주아 혁명조차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겁쟁이가 됐다. 자신들의 등 뒤에서 노동계급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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