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유지 법 개정안 논란 ─ 낙태는 왜 여성이 선택할 권리인가?

전주현 123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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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교리로서 모든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150여 년 전, 1869년 교황 비오 9세가 “수정 순간부터 인간”으로 규정하고 ‘모든 낙태를 살인’으로 천명했다. 뒤이어 1884년 교황 레오 13세가 ‘낙태 살인론’ 교리를 재확립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교회는 경제적·정치적 권력에서 밀려났지만, 국가는 억압과 사회 통제를 위해 교회 이데올로기를 유용하게 이용했다. 19세기 들어 자본주의 국가는 성장하는 노동계급을 통제하고자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를 허용하면 무분별한 낙태로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이들은 낙태 불법화 때문에 여성들이 생명까지 위협받는다는 사실은 깡그리 무시한다. 우파들이 ‘생명 존중’ 운운하는 것은 특히 위선적이다. 이들은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고 난민 추방과 인종차별에 앞장서는 역겨운 행태를 보여 왔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우익 테러를 부추기는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간생명의 불가침성에 대한 회칙’ 〈생명의 복음〉을 낙태 반대 교리로 삼는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는 칠레의 피노체트 같은 군사 독재 정권들을 옹호한 반면, “기초공동체(민중 교회)”와 “해방신학”을 비난하고 징계한 보수적인 전통주의자다.

낙태를 죄악시하는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우파는 정작 박정희 정부가 1960~70년대에 실시한 산아제한 정책을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국가는 인구가 많으면 경제 성장에 해롭다며 여성들에게 피임과 낙태를 공공연하게 권장했다. 1970년대에는 성가병원 같은 가톨릭 병원에서도 하루에 수십 건씩 낙태 시술이 진행됐다.9 개신교 우파 일부는 박정희 산아제한 캠페인에 적극 참가했다. 성경과 교리 해석을 변경해 ‘가족계획’을 합리화하고 박정희의 지원 속에서 ‘가족계획’을 교회사업으로 적극 활용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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