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유지 법 개정안 논란 ─ 낙태는 왜 여성이 선택할 권리인가?

전주현 123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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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숙려기간 의무화도 불필요하다. 낙태와 피임에 관한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상담은 필요할 수 있지만, 상담을 의무화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법안 마련 때 참고했던 독일에서 시행되는 의무적 상담은 “낙태 예방”이 목적이다. “임신의 지속을 위하여 부녀를 격려”하고, “태아가 생명에 대한 독자적 권리를 가지는 것[을] … 부녀에게 인식”시키는 내용이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여성들은 낙태 시술 전 적어도 24시간 전에 초음파 검사를 받아 태아의 모습과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4 상담·숙려기간 의무 제도는 이미 낙태를 결심한 여성에게 죄책감만 심어주며 불필요하게 낙태를 지연시킬 뿐이다.

의사의 낙태 거부권 조항이 포함된 것도 문제다. 물론 낙태에 적대적 태도를 갖고 있는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은 여성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사 의사가 자신의 신념 때문에 낙태를 거부하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여성이 다른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 법안은 의사가 낙태를 거부하면 다른 임신·출산 상담기관을 소개시켜 준다는 내용만 들어 있다. 낙태 억제가 목적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사의 거부로 여성은 상담기관을 전전하다가 낙태가 지연되기 십상이고 기간 제한에 걸려 처벌받을 위험이 커진다.
정부안이 통과되면, 낙태반대론자들이 의사 거부권 조항을 적극 이용해 합법 낙태를 더 축소시키려고 공격할 것이 분명하다. 낙태가 합법화된 나라들에서 의사 거부권이 포함된 곳들이 많은데,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 조항을 이용해 낙태권을 공격해 왔다.

‘성평등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낙태죄 존치를 결정하자, 여성 대중의 실망과 공분이 커지고 있다.

몇몇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이 낙태죄 존치를 강력하게 고수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10월 7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낙태죄 유지에 청와대의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또한 정부가 지난 6~7월쯤에 “임신 주수에 따른 낙태죄 유지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이미 정해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괘씸하게도 문재인은 지난 8월 중순에 발표된 법무부의 양성평등정책위원회의 “낙태죄 폐지” 권고안을 애당초 무시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부터 낙태죄 폐지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2017년 11월, 23만 명이 참가한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도입’ 국민청원에 알맹이 없는 답변만 내놓았고, 2018년 3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낙태죄 폐지 권고안도 거부했다. 당시 청와대는 낙태죄 폐지 여부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을 회피하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공을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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