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6호 2020년 11~12월호)

지난 호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유지 법 개정안 논란 ─ 낙태는 왜 여성이 선택할 권리인가?

전주현 123 36
362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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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여성단체들과 노동단체들은 낙태죄 폐지를 요구해 왔다. 그런데 아쉽게도 낙태 부분 합법화를 지지하는 곳이 많았다. 20대 총선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의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들은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 부분 허용안을 제시한 바 있다.

헌재 판결 직후, 당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낙태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낙태죄 폐지, 임신 14주 이내 낙태 모두 허용, 14~22주에는 특정 사유 낙태만 허용하는 낙태 부분 합법화 방안이었다. 불법 낙태를 시술한 의사에게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한다는 처벌 조항도 포함했다. 이런 법안은 진보정당의 법안으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고, 많은 단체들(모낙폐와 민주노총을 포함해)과 개인들의 반발을 샀다.

최근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을 비판하며 “여성임신 중단, ‘처벌’ 아닌 ‘여성의 권리보장’으로 방향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취지를 살려 “안전한 임신 중단과 권리보장을 위한 모자보건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논란을 반면교사 삼아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낙태 합법화의 내용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 여성의 삶에 실질적 이득이 되기 위한 조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형법의 낙태죄는 당장 폐기돼야 한다. 또한 모자보건법, 의료법에 낙태 처벌 및 규제 조항도 없어야 한다. 여성은 물론이고 여성 동의 하에 낙태 시술한 의사에 대한 처벌도 안 된다.
2) 여성이 원하면 언제든지 낙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낙태 결정권은 의사도, 국가도, 파트너도 아닌 오직 여성에게 있다. 청소년은 보호자의 동의가 없이도 자신이 원할 때 낙태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3) 건강보험으로 안전한 낙태 시술 및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다.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 청소년, 외국인 여성 등 누구든 무상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낙태약(미프진), 응급 피임약, 피임도구도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관련한 의료 상담과 지원도 제공돼야 한다.
4) 국가는 가급적 모든 병원에서 낙태 진료가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합법화한 네덜란드는 국가의 승인을 받은 12개 진료소에서만 낙태 시술이 가능하다. 국가 지정 진료소가 너무 부족해 면담 약속만 몇 주가 걸린다.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의과대학 정규과정에 낙태 교육을 포함해 숙련 의료인을 양성해야 한다.
5) 상담 의무화나 숙려기간은 없어져야 한다. 임신 유지를 강요하기 위해 죄책감을 주는 상담이나 낙태를 지연시키는 숙려기간은 모두 불필요하다. 낙태·피임 관련 정보 안내를 위한 의료 상담은 제공하되, 의무화해서는 안 된다.
6) 낙태 후 충분히 쉴 수 있도록 유급 휴가를 보장해야 한다.

계급 문제

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여성의 문제로만 여긴다. 그러나 낙태는 기본적으로 노동계급의 문제다. 낙태 금지와 처벌로 가장 고통받는 여성들은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들이다. 부유한 여성들은 낙태가 불법이어도 별 어려움 없이 낙태를 할 수 있다. 자신의 재력을 동원해 국내외 병원이나 개인 주치의를 통해 낙태할 수 있다. 노동과 양육 부담에 시달릴 걱정도 없기에, 낙태 뒤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푹 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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