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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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논문

중국의 ‘국공합작’ ― 반제국주의 민족공조의 모범적 사례인가?

최영준 undefined 169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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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군 점령지의 부농, 지주, 상인은 관대한 대우를 받았다. 중국공산당은 대도시에서 노사 간 충돌을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항일 집회에서 국민당과 정부에 맞서 투쟁하자는 구호를 중단했으며, 기업을 보호하고 지주와 부농의 토지 및 재산을 몰수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마오쩌둥은 1차 국공합작을 참담한 비극으로 만든 장본인 장제스에게 “당시 연합전선 때처럼, 여러분과 강력한 혁명적 연합전선을 구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당시 합작으로 봉건적인 압제자들 모두가 우리 앞에서 흔들린 것은 바로 이런 합작 덕분이었습니다”라며 손을 내밀었다.

장제스는 반일 공동 투쟁을 조건으로 공산주의 선동과 계급투쟁의 중단을 강력히 요구했고 중국공산당은 이를 수용했다. 2차 국공합작 기간 동안 중국공산당이 중심적 활동을 했던 곳에서 지주에 대한 억압과 토지 분배는 일어나지 않았다. 공산당의 독자적 선전물도 없었고, 거리의 벽에서 볼 수 있는 포스터는 침략자에 맞선 투쟁, 구국·평화통일을 촉구하는 것들뿐이었다. 중국공산당은 2차 국공합작을 위해 1937년에는 급진적 토지 강령을 폐기했다.

하지만 반일 민족공조에 해당하는 국공합작은 항일 투쟁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국민당은 국공합작을 시작한 뒤에도 항일 전쟁을 제대로 벌이지 않았다. 장제스는 1938년 이른바 ‘반일 용공 단체’를 금지했고 반정부 단체의 활동을 제한하는 법률을 정했다. 장제스는 일본의 전면 침략이 시작된 지 5년 뒤인 1941년에야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반면 공산당은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고 항일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공산당 지도자들은 항일 의지가 박약하고 부패한 국민당의 약점을 이용하고 국민당 통치지역에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고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국민당의 부패와 억압 정책이 민중의 반일 의지를 꺾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이는 매우 위험천만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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