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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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논문

정체성 정치 ― 차별에 맞서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정진희 17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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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정치가 집단적 저항을 호소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지만, 개인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은 운동을 주도하는 중간계급적 인자들의 개인주의와 온건함에 잘 부합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차별로부터 해방

정체성 정치는 여러 차별이 사회의 계급 구조와 분리돼 각각 자율적인 원리로 일어난다고 본다. 이렇게 사회를 파편적으로 보는 시각은 차별을 개인의 문제로 보게 만들어 사회 변화에 비관적인 생각을 낳을 수 있다. 혁명은 불가능하고 기껏해야 온건한 변화만 가능하다고 보게 된다.

겉보기에는 별개의 현상으로 보여도 그것을 전체 사회의 일부로 봐야 한다. 차별의 형태와 경험은 사회의 작동 원리라는 더 넓은 문제와 분리해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차별이 계급을 가로질러 일어나지만, 계급 관계와 분리돼 독자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또, 차별의 특정 형태들과 경험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다. 이를 테면, 자본주의에서 과거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 구조적 변화로 말미암아 세계적으로 여성 수백만 명이 노동자가 됐고, 이로써 여성들이 차별을 경험하는 방식과 차별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마르크스주의는 차별을 불변의 인간 본성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특정한 사회의 산물로 본다. 계급사회 발생 이전에는 여성·성소수자 등에 대한 체계적 차별이 없었다. 여성차별과 섹슈얼리티 통제는 계급사회에서 생겨나 발전한 가족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러 차별은 지배계급의 통치 전략(이간질로 각개격파하기 전략)과도 관련 있다.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의 피지배계급을 이간질하고 분열시켜 그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계급사회에서 오래된 통치 전략이다. 성, 성적 지향, 피부색, 국적 등을 이용해 차별을 부추겨 노동계급의 단결력을 약화시키고 투쟁의 성장을 막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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