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정체성 정치 ― 차별에 맞서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정진희 17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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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색내기와 모순은 새삼스럽지 않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다. 1998년 초유의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김대중 정부는 노동계급에게 해고와 복지 삭감 등 혹독한 내핍을 강요하는 한편,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계열 여성단체 간부들을 대거 정부와 여당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 여성단체 간부들이 대거 국가기구로 진출했다. 여러 개혁 입법이 추진되고 이제 대통령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시대가 됐지만, 대다수 여성에게는 실질적 개선이 거의 없었다. 노동 개악으로 노동계급 여성들은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이 악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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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내기로 일관해 온 문재인 정부
2017년 4월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 정책 간담회에 참석한 문재인과 여성단체 간부들

국가기구에 진출한 여성운동가들은 국가기구를 책임 있게 운영해야 한다는 논리의 포로가 됐다. 여연 대표 출신인 한명숙은 국회의원과 장관에 이어 총리까지 됐지만, 그는 실질적 개혁을 제공하기는커녕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법안을 발의했고 여성 노동자 투쟁을 탄압하는 데도 동참했다.6

지난 민주당 정부 집권기에 주류 여성단체들은 그 정부들을 지지하며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에 대한 비판을 삼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생색내기식 대책과 노동 개악을 비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노동자 투쟁에도 거의 무관심하다.

몇몇 개혁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보는 사람들은 국가가 여성운동을 흡수하려는 것을 경계한다. 이들은 흔히 여성들의 ‘자율적’ 운동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운동의 필요성만 얘기하며 운동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 운동주의로는 개혁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불편한 용기가 불법촬영물에 항의하는 대중시위를 조직하며 엔지오가 주도하는 여성운동에 도전했지만, 그 운동의 정치적 약점(단일 쟁점주의, 분리주의 등)이 극복되지 못한 채 7개월 만에 중단됐고 다시 엔지오가 여성운동을 주도하게 됐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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