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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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논문

정체성 정치 ― 차별에 맞서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정진희 17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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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정치를 논할 때는 먼저 차별받는 사람들의 정체성 정치와 우파의 정체성 정치를 구별해야 한다. 차별에 맞서 변화를 위해 특정한 차별을 겪는 사람들이 모두 결집할 것을 호소하는 것과, 특정 집단을 배척하고자 데마고기를 펴는 정체성 정치는 사회적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진보적이지만, 후자는 반동적이다.

차별받는 사람들과 정체성 정치

모든 사상과 운동이 그렇듯이, 정체성 정치를 이해하려면 그것을 진공 속에서 고찰할 수 없다.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 차별받는 사람들이 정체성 정치에 이끌리는 것은 정체성 정치가 그들이 겪는 차별의 현실에 부합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차별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을 저항의 한 형태로 느낄 수 있다. 여성차별에 반대해 ‘여성들의 연대’를 호소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무지개 깃발을 들고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에 참가하는 것은 성소수자들에게 신나고 자신감을 주는 경험일 수 있다.

한국에서 정체성 정치가 집단적 저항의 방식으로 사용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2018년 ‘불편한 용기’가 주도한 불법촬영 항의 운동이다. 수만 명이 참가한 이 대중운동의 주도자들은 분리적 페미니스트2로서 ‘생물학적 여성’의 단결을 강하게 호소했다. ‘워마드’가 주도한 ‘비웨이브’의 낙태 합법화 운동도 같은 사례다. 분리적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을 공공연히 배척하며 생물학적 여성의 단결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분리적 페미니스트들만 정체성 정치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완화된 형태로 ‘여성 연대’를 호소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한국 여성운동의 주류인 엔지오 여성단체들은 1990년대부터 개혁 입법 활동과 여성 정치인 배출을 위해 여성의 단결을 호소해 왔다. 여성의 경험은 남성과 완전히 다르고, 여성만이 여성을 대변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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