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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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스탈린은 소련의 핵무기 개발 성공으로 미국의 핵 보복이 어려워졌고, 소련이 미국과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서 한반도에서 미국의 힘을 시험해 볼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이후 소련은 전쟁 개시에 동의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스탈린은 소련의 개입이 드러나지 않기를 원했다.

중국도 내전에 참전한 중국군 소속 조선인 병사들을 북한으로 보내 주는 등의 지원을 했다. 대륙에서 전투 경험을 쌓은 대규모 군대가 충원되면서,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 주력의 상당수가 이들로 채워졌다.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하자, 처음에는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고 남한군은 일방으로 패주했다. 이승만은 북한군의 서울 점령 전에 몰래 도주했다.

그러나 미국은 남한을 포기할 수 없었고, 개전 직후 바로 참전을 결정했다. 남한 국가는 미국의 지원으로 세워진 국가였고, 남한은 일본 방어의 전초 기지였다. 미국이 남한을 상실한다면 일본의 안전이 위협받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위신이 떨어질 터였다. 미국 트루먼 정부는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사태를 관망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8월 무렵 전선은 낙동강 부근에서 고착된 채 치열한 참호전 양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 무렵에 북한군 주력은 미군 폭격 등으로 대부분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었고, 미국의 지원으로 남한군은 빠르게 재건돼 미군과 남한군을 다 합쳐 북한군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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