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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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들어 소련의 지원 속에 북한에서 이른바 ‘인민민주주의 개혁’이 진행돼 토지가 분배되고 주요 산업이 국유화됐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사회주의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국가와 생산수단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농민들은 땅을 받았지만, 무거운 현물세 부담도 함께 받았다. 토지개혁과 주요 산업 국유화 조처는 국가 주도의 급속한 자본축적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창출해 주는 일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한반도 분단만은 피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미 전 세계에서 냉전 경쟁은 본격화되고 있었다. 한반도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47년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인 소련 봉쇄 정책을 선언했다. 곧 미국은 마셜플랜을 발표했다. 마셜플랜은 유럽의 경제 재건을 지원해 유럽을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로 통합하고 소련의 영향력을 잠식하려고 고안된 계획이었다. 이에 대응해 소련도 동유럽을 자국 경제와 묶는 블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1948년 한반도 남북에서 공식적으로 두 정권이 수립됐다. 그러나 남한에서 세워진 국가는 자유와 민주주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끔찍한 경찰국가였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남과 북 두 체제의 권력 형태는 달랐지만, 두 체제는 모두 노동자를 착취해 경쟁적으로 자본 축적을 추구하는 체제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은 상대방의 힘을 가늠해 보며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1948~1949년에 베를린 위기가 벌어졌다. 미국과 소련이 독일 문제 처리를 놓고 대립하며 긴장이 쌓였고, 마침내 소련이 미국·영국 등이 장악한 서베를린을 봉쇄해 버렸다. 미국이 핵무기 동원을 잠시 고려했을 만큼 한때 위기는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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