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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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조직을 결성할 권리가 박탈당해 있었기에,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했다. 예컨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잦은 이직을 하는 것이 그런 저항의 사례다. 경공업의 경우 1953년 전체 종업원 수가 100이라고 한다면, 직장에서 이동한 수는 107퍼센트가 넘었다고 한다. 이런 높은 이직률은 흥미롭게도 1970~1980년대 군사 독재하 남한 노동시장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희생 강요는 때때로 큰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컨대 황해남도 배천 지역을 중심으로 농업 집단화에 반발하는 일이 있었다. 이른바 ‘배천 바람’이었다. 1957년 북한 당국은 이런 움직임을 공안 탄압으로 눌렀다. 배천군에서 “간첩, 파괴, 암해도당들”에 대한 현지 공개 재판을 진행했고, 같은 시기에 황해남도와 개성을 중심으로 간첩을 체포했다는 북한 공식 매체의 보도가 잇달았다.

김일성파는 중공업 중심의 공업 성장 노선을 추진하면서 북한 경제가 자국에 종속되기를 원했던 소련의 반대에 부딪히고 관료 집단 내부의 반발에도 직면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관료 내부의 반대를 제압하고 강력한 지도력을 구축하고 자주 노선을 천명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 경제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남한의 ‘한강의 기적’ 전에 북한에 ‘코리아의 기적’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도 자본주의에 고유한 모순을 피하지 못해 오래지 않아 경제성장이 둔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의 세계화 경향이 유력해짐에 따라 심각한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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