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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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일부 소장 장교들은 한국 사회의 낙후한 현실에 답답해 하며 자신들의 주도로 자립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해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장교 집단이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해 이전의 4월 혁명을 부정하고 국가 주도의 개발 체제를 확립하게 됐다.

이 기간 국가가 주도해 세계 자본주의에 깊숙이 편입되는 방식의 급속한 자본축적이 이루어졌다(소위 ‘한강의 기적’). 한국이 자율적인 자본축적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 것은 한국전쟁이 준 영향이 컸다. 1949년부터 진행된 농지개혁과 전쟁을 거쳐 지주 계급이 해체되면서 자본주의적 발전에 족쇄가 될 만한 사회적 관계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분단과 전쟁으로 노동자 운동과 저항 세력이 파괴됐다. 해방 직후 강력했던 한국의 노동자·농민 운동과 좌파 세력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집요한 물리적 탄압으로 기반이 점차 파괴됐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다음으로 강력해진 국가가 있다. 전쟁은 국가기구들이 강력해지는 계기였다. 국가 관료들은 미약한 사적 자본들을 대신해 자본축적 과정을 진두 지휘했다. 국가가 세계시장을 뚫을 만한 몇 가지 주력 분야를 택해 거기에 자원을 집중하고, 기업들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게 지휘하고 감독했다.

미국의 지원 효과도 컸다. 냉전 하에서 한국이 대소 전초기지 구실을 하려면 자체의 방위력과 이를 뒷받침할 경제 건설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국이 수출 주도 정책으로 성공하는 데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라는 지위가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미국의 후한 조처 덕분에 한국은 다른 개발도상국들에 견줘 외자를 쉽게 끌어올 수 있었고, 세계 최대 시장에 용이하게 진출하고 수출을 급격히 늘릴 수 있었다. 미국의 촉구 속에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일본한테 받은 자금, 미국을 지원하고자 베트남 전쟁에 파병하면서 누린 베트남전 특수도 당시 한국 경제에 가뭄의 단비 같은 구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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