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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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와중에 미국은 일본과 강화조약을 맺는다. 그게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다. 그러나 이 조약에는 중국, 한국 등 일본 침략의 피해국들이 배제된 채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켜 미일동맹을 안착시키기 위해 서둘러 추진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됐다. 평화헌법으로 군대 보유 및 교전권이 없는 일본이 미국과 안보조약을 체결하면서 미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이를 지원하는 근거가 마련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과거사 문제(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등)의 진정한 해결은 무시됐다. 지금도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주는 과거사 문제의 시작이고, 그 시작부터 미국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이 밖에도 미국은 아시아에서 자국의 패권을 지킬 동맹들을 지원하고 새로운 동맹 체제를 구축한다. 미일안보조약 외에도, 1951년 미국·호주·뉴질랜드의 군사 동맹 조약인 태평양안전보장 조약과 필리핀과의 상호방위조약,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1954년 대만과의 상호방위조약 체결이 이어졌다. 이때 미국의 지원 속에 아시아 각국에서 독재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굳히게 됐다.

냉전의 최전선이 된 한반도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엄청난 인명 피해, 물적 피해를 낳았다. 남한은 물론이고 북한은 한국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1953년 휴전이 됐을 때 북한은 3년간의 폭격으로 황폐해져 현대적인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미군은 도시에서 폭격 목표물을 찾기 힘들자 농사를 지으려고 쌓은 저수지 둑을 폭격해 파괴해 버리기도 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북의 대치와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 경험 때문에 양측은 더욱 신경질적으로 서로 의식했다. 지배자들의 공식 이데올로기에도 전쟁 경험이 깊이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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