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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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C-68은 이른바 ‘공산주의의 세계 지배 공세’를 군사적 우위를 통해 분쇄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려면 미국은 서구 국가들을 묶은 효과적인 군사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서독이 재무장 기회를 잡게 됐다. 미국이 보기에 서독은 소련에 맞선 유럽 방위의 전초기지였다. 한국전쟁은 유럽 각국의 ‘독일 공포증’을 누르고 서독 재무장이 정당화되는 근거가 됐다. 서독 재무장은 1955년 서독의 나토 가입으로 귀결됐다.

미국과 서유럽의 군사기구인 나토에 맞서 소련은 동유럽에서 군비 증강 노력을 기울였고 바르샤바조약기구를 결성하게 됐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은 일본이 재무장하고 경제가 부흥하는 계기가 됐다. 1949년 중국혁명으로 중국을 상실하자, 미국에게 자국의 패권을 지키는 데서 일본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신속하게 개입한 남한을 잃게 되면 바로 일본이 위협받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를 톡톡히 누리면서 경제가 회복됐다. 일본이 한국전쟁의 후방 보급 기지 구실을 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가 한국전쟁은 “신이 내린 선물”이며 “이제 일본은 살았다” 하고 말할 정도였다.

한국전쟁 발발로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1950년 7월 8일 맥아더는 서한(맥아더 서한)으로 일본에서 7만 5000명의 국립경찰예비대 창설과 해상보안청 정원을 8000명 증원할 것을 명령했다. 이들이 일본 자위대의 기초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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