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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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논문

한국전쟁의 성격과 그 결과

김영익 1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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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실전 사용은 없었으나, 미군은 폭격으로 북한 지역을 말 그대로 초토화했다. 태평양 전쟁 때 투하된 폭탄의 총량이 50만 3000톤이었는데 한국에는 63만 5000톤이 투하됐다. 여기에 3만 2000톤 이상의 네이팜탄이 더해져야 한다. 예컨대 11월8일 B-29 70대가 신의주에 550톤의 네이팜탄을 투하해 도시를 불태워 버렸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60개 도시가 평균 43퍼센트 수준으로 파괴됐는데, 한국전쟁 때 북한의 도시와 마을의 파괴 정도는 “40~90퍼센트까지로” 추산됐다. 북한의 22개 주요 도시 중에서 18개 도시는 최소한 50퍼센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51년 정전협상이 시작됐다. 그러나 양쪽 모두 전쟁을 쉽게 끝낼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이익을 키우고 ‘명예롭게’ 전쟁을 끝낼 방법을 찾으며 전쟁을 계속했다. 미군 합동참모본부가 1951년 7월에 극동군 사령관에게 보낸 훈령을 보면, “남한 정부의 통제권을 행정과 군사 모든 면에서 38선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북쪽으로 확대한다”, “북한의 침략이 재개되지 않도록 한국군을 충분히 강화시킨다.” 즉, 이때부터 미국의 목표는 정전협상을 통해서 전쟁을 끝내되, 적에게는 최대한의 타격을 주고 남한군의 전력을 최대한 강화하면서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중국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소련의 스탈린은 매우 냉혹한 계산을 했다. 그는 정전협상 진행을 지지하면서도 북한이 잃는 것은 인명뿐이라면서 협상과 동시에 전쟁을 지속하라고 촉구했다. 스탈린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최대한 힘을 소진하기를 원했다. 그 틈에 소련은 미국과 경쟁할 역량을 키울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래서 2년여 동안 판문점에서 양측 협상자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전선에서는 양측 병사들이 고지전에 계속 투입됐다. 제1차세계대전의 참호전처럼 단 한 뼘의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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