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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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부터 주택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신규 투자로 더 많이 생산된 자동차와 라디오의 판매가 정체하다가 감소했고, 이는 다시 전력량과 철강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생산재 산출량은 1929년 한 해에만 25퍼센트 하락했고, 그 다음 해에는 25퍼센트 더 줄어들었다. 실물경기 하강에 자본가들은 비생산적 지출을 줄였고, 그 결과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고 부동산 대출을 많이 해 준 은행이 파산하게 됐다.

크리스 하먼은 미국의 위기가 형성되고 폭발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비생산적 지출과 투기로 생산적 투자 부족분을 메우고 민간 대출로 소비를 지탱하는 것에 의존한 대규모 호황. 그런 호황 뒤에 찾아온 침체는 그만큼 골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침체에 빠진 나라가 세계 최대 공업국이었던 만큼 그 파장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26

루스벨트의 등장과 제1차 뉴딜정책

루스벨트가 취임할 당시 미국의 금융 체계는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루스벨트는 은행을 강제 휴업시켜 지불 불능 사태에 빠진 은행들에 잠시의 여유를 제공했고, 이어서 1933년 글래스-스티글법으로 알려진 은행법을 발표했다. 뉴딜정책에서 금융 체계 개혁의 핵심은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하고 상업은행에 이자 지급 상한제를 도입하는 등 규제를 강화한 것이었다.27 이는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투자하다 손실을 입어 예금 지급조차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었다. 루스벨트는 금융 체계를 분할하고 칸막이화해 한 쪽의 부실이 다른 쪽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으려 했고 연방예금보험공사FBDIC를 설립해 역사상 처음으로 예금자 보호를 시행했다.

루스벨트의 금융 체계 개혁은 당시 대중의 불만을 사고 있던 J P 모건 같은 금융가가 금융계를 지배하는 것을 가로막고 연준이 중앙은행으로서 구실을 실질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28 금융 체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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