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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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고 평가받는 《미국화폐사》의 저자인 밀턴 프리드먼과 안나 슈워츠는 1930년대 대불황을 주로 명목 통화 공급량의 전례 없는 감소로 인한 총생산의 둔화로 설명한다. 즉, 중앙은행이 총생산의 증가에 맞춰 적절하게 통화를 공급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실물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16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1928년 뉴욕 연준은행장 벤자민 스트롱이 갑작스럽게 죽어 통화 정책에 혼란이 생겼다고까지 주장한다.17 그러나 테민은 이런 통화주의적 설명이 틀렸다고 반박한다. 통화량이 감소했다면 이자율이 상승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회사채 수익률은 도리어 하락했다. 물론 명목 통화량은 감소했지만 물가도 하락했으므로 실질 통화량은 감소하지 않았다.18

다른 한편 벤 버냉키는 프리드먼과 비슷하게 대공황의 원인을 실물부문이 아닌 곳에서 찾지만, 화폐 공급이 아니라 금융 체계에서 원인을 찾는다는 점에서 프리드먼과 차이가 있다. 버냉키는 어빙 피셔의 부채-디플레이션 이론의 뼈대를 이어받아 신용-디플레이션 이론을 주장했다. 피셔는 공황이 발생하면 은행의 부실 채권이 증대하면서 대출을 줄이게 되고 이것이 디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킨다고 주장했다. 버냉키는 이 설명에서 ‘은행의 부채’ 대신 ‘금융 체계의 몰락으로 인한 신용 위기’를 넣어 설명했다. 피셔와 버냉키의 설명은 공황의 확산을 설명하는 데는 유용한 면이 있지만 위기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찰스 킨들버거는 자본주의 역사를 조망적으로 관찰하며 1930년대의 대불황을 자본주의 변화의 한 변곡점으로 파악한다. 즉, 자본주의가 영국 중심의 금본위제 체제에서 미국 중심의 달러 중심 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헤게모니 위기가 나타났는데, 바로 제1차세계대전, 세계 대불황, 제2차세계대전이 그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19

킨들버거가 말한 영국의 헤게모니는 영국 산업의 우위와 금본위제였다. 1914년 이전 런던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였고, 많은 국가들이 무역 흑자로 생기는 금을 런던에 보관했다. 그러나 아이켄그린은 영국의 헤게모니라고 알려진 것이 실제 현실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영란은행도 지불 불능에 처해 다른 나라의 준비금에 의존해야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켄그린은 영국의 헤게모니 쇠퇴보다는 금본위제와 이를 기반으로 한 국제적 협력의 붕괴가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20 이미 1920년대에 금본위제가 초래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는데도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지도자들이 허황되게 금본위제를 고수하려 했던 것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1925년 영국의 금본위제 복귀인데, 이 때문에 영국 파운드화가 과대평가되면서 영국 경제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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