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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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예산 정책이 한 사례다. 1930년대 초 후버는 균형예산 정책을 두고 ‘경제 회복에 가장 필요한 요소’이고, ‘긴요한 조처’이자 ‘나라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이며, ‘정부와 개인의 재정적 안정의 기초’라고 말했다.6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1932년 대통령으로 당선했을 당시에 세출 축소와 균형예산을 굳게 약속했다. 루스벨트는 민주당 후보 지명을 수락하는 연설에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세입이 세출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부도 일반 가정과 마찬가지로 1년쯤은 지출이 수입을 약간 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습관이 지속되면 빈민구제소에나 가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7 하고 말했다. 루스벨트는 정권 초기에도 공무원 봉급을 일률적으로 인하하는 것을 포함한 정책들을 내놓기도 했다.8

1929년 주가 폭락과 경기 침체에 직면한 후버는 그 위기를 단순히 경제의 불균형에 따른 일시적 조정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후버는 국제 무역과 금융 질서에서는 금본위제를 유지했고,9 국내에서는 균형예산 기조를 유지했다. 그는 실업 구제와 복지 사업 지출을 위한 적자 재정 편성은 국내 경제를 더 악화시킬 뿐 아니라 실업자들을 일하게 하는 인센티브를 제거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낭비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재무장관 앤드류 맬론은 후버의 정책을 “노동 청산, 주식 청산, 농민 청산, 부동산 청산”이라고 요약했다. 이런 정책은 불황을 통해 기업이 파산하고 임금·농산물·부동산이 적정 가격에 이를 때가지 하락한 다음에는 경제가 정상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사고를 반영했다.10 당시 금융계를 대변하는 정기간행물들은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대불황이 매우 유익하다는 기사를 실었고, 구세군 건물 창문에는 “경제 공황은 도덕심의 각성, 정신적 재생, 정의의 회복에 의해 치유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11

1929년 말 후버 대통령은 기업주들에게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해고를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 구매력이 유지돼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기업가들은 임금 삭감을 번영으로 복귀하는 적절한 방안이라고 생각해 임금 삭감을 단행했다. 당시 대표적 기업이었던 유에스스틸의 1932년 주당 임금은 1929년보다 63퍼센트나 줄었다. 임금 삭감뿐 아니라 실업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다른 한편, 후버는 미국 경제의 약점은 국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무역과 관련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후버는 1930년 6월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제정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했고, 1931년 6월 정부 간 배상과 채무에 대해 1년간의 지불 유예를 선언했으며, 금본위제와 활발한 국제무역 유지에 강한 집착을 드러냈다.12 그러나 보호무역주의는 농산물을 수출하는 미국 농민들이 무역 보복을 당하는 악영향만 초래했다.

1920년대에 무분별한 대출과 투자 때문에 재정 상태가 열악해진 농촌의 작은 은행들이 먼저 파산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 후반 곡물 가격 하락과 경제 위기로 농민들과 상인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남부 지방 최대의 투자금융 회사인 캘드웰 앤 컴퍼니가 파산하면서 아메리칸 익스체인지 신탁은행도 함께 무너졌다. 캘드웰, 테네시은행 파산으로 반코켄터키와 연합 은행 15곳이 파산했고, 서부 캐롤라이나에서도 은행 15곳이 파산하는 등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했다. 1930년 12월에는 뉴욕 브루클린의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은행이 파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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