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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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1929~1941년의 GNP 변화 추이

  1926~1929년 1929~1933년
명목GDP 7.0 -45.6
실질GDP 10.6 -26.5
광공업생산 15.3 -35.5
주택 착공 -40.0 -81.7
소비자물가 -3.4 -24.0
기업 수익 68.9 -80.0
수출 8.9 -68.0
경상수지(GDP 대비) 0.8 0.3
실업률 8.7 24.9

 

1929년 3월 4일 미국 31대 대통령에 취임한 허버트 후버는 “신의 가호 하에 우리나라에서 빈곤을 추방할 날이 멀지 않아 오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4 이런 낙관적 전망은 후버뿐 아니라 많은 정치·경제 지도자들도 공통으로 갖고 있었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캘빈 쿨리지는 “우리나라의 장래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희망에 가득 차 있다”5고 믿고 있었다. 1930년대 대불황이 임박했는데도 증시는 신고가新高價를 경신했고, 증시에 대한 한없는 도취감도 만연해 있었다. 내셔널 씨티뱅크씨티은행의 전신 은행장 찰스 미첼은 “주식시장이나 산업의 기초 및 신용의 구조에 대하여 어떤 나쁜 징조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주가는 항구적인 고수준으로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회가 1929년 초부터 경기 후퇴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도취감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대불황에 대한 후버의 정책

미국 역사상 최악의 평가를 받는 대통령 중 한 명이 후버다. 그가 재임하고 있던 기간에도 대공황이 초래한 결과들을 모두 후버 탓으로 돌리는 정서가 팽배해 있었다. 폐허가 된 판자촌은 후버 주택이라고 불렸고, 동전 한 푼 없는 텅 빈 주머니는 후버 주머니라고 불렸다.

1930년대 대불황은 당시의 사상(자유방임주의)과 경제 제도들(금본위제, 균형예산 등)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처럼 동요하고 흔들리는 구체제의 마지막 보루를 자처한 후버는 비극을 맞았고, 그 반사이익으로 성과는 모호했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던 루스벨트는 도드라져 보였다. 그러나 대공황이 막 터졌을 당시 후버가 실행에 옮긴 정책들은 모든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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