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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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933년 초 NIRA와 AAA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산업부흥청, 공공사업청PWA, 농업조정청, 농업보장청, 재입주청, 테네시강유역개발공사TVA 등의 기구가 설립됐다. 1933년 5월 설립된 연방긴급구제청FERA은 전국의 구제 대상 가족에게 매달 평균 15달러를 지급했고, 연방과잉구제회사FSRC는 과잉 농산물의 매입했다. 공공사업청은 실업자를 고용해 공공사업을 벌였고, 전미청년국NYA은 해마다 청년 50만 명을 고용했다. 시민자원보존단CCC은 지방의 공공사업에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매달 30달러를 지급했는데, 1933~1941년에 모두 250만 명을 고용했다. 1935년 루스벨트는 긴급구제법ERA을 제정해 48억 달러의 자금으로 각종 공공정책을 추진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사업진흥청Works Progress Administration으로, 노동자 780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1인당 매달 60달러를 지급했다.

32 Weinstein 1980, pp35-36.

33 프라이델 & 브린클리 1985, pp262-269.

34 박무성 1979, p187.

35 루스벨트는 와그너법이 미 의회에서 통과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지만, 보수파의 반발에 대항해 노동자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이 법안에 서명했다. 와그너법도 위헌 소송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연방대법원이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것은 경제가 더블딥의 조짐을 보이고 대중의 불만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루스벨트와 뉴딜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태도가 변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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