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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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불황은 ‘검은 목요일’로 알려진 10월 24일이나 ‘마의 화요일’로 알려진 10월 29일의 증시 폭락에서 시작됐다고 하지만, 경제 위기의 전조는 이미 192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갤브레이스는 1920년대 후반을 미국 역사에서 활기 넘치고 구속 받지 않았으며 완전히 행복했던 시대로 묘사했는데,3 이런 번영의 토대는 그리 탄탄하지 않았다.

1920년대 미국은 국제적 강국으로 부상했고, 미국의 산업 생산은 전례 없이 높은 수준으로 도약했다. 1919년 미국 자동차 생산량은 165만 대였는데 1929년에는 세 배나 증가해 458만 대에 이르렀다. 자동차뿐 아니라 냉장고, 레코드 플레이어, 전기 다리미, 선풍기, 전등, 토스터기, 진공 청소기 등 내구성 소비재 가전제품이 등장해 생산과 소비가 크게 증가했다. 소득이 증가하고 노동시간이 감소해 여가가 늘었고, 이는 다시 소비재 소비로 이어졌다. 농업과 제조업에서 생산성이 향상됐다. 가솔린 엔진 트랙터 개발, 농장 기계화, 헨리 포드의 T형 포드 설계, 이동 조립 라인moving assembly line 도입 등으로 생산성이 향상했다. 이런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많은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새 시대에 접어든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 직후 농산물 품귀로 상승했던 농산물 가격이 풍작, 안정적 생산, 생산성 향상으로 하향 안정되면서 농업 부문은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기업 수익성이 하락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경기가 후퇴하지 않도록 1924~1927년 저금리 정책을 유지했다.

이미 1920년대 후반부터 미국 산업 생산이 완연한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거품의 형성과 발전에는 속도가 붙었다. 당시 플로리다 부동산 붐이 일었다. 심지어 해변에서 10킬로미터가 떨어진 곳도 온화한 해변 휴양지로 소개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도시에서는 찰스 폰지라는 사기꾼이 등장해 엄청난 수익을 약속하며 거액의 투자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갤브레이스가 《1929 대폭락》에서 잘 지적했듯이, 주택·부동산 붐에 이어 증시 과열이 나타났고, 이런 거품은 경제의 견실한 성장에 기초한 것이라는 과도하게 낙관적인 평가가 팽배했다. 그러나 플로리다 부동산 붐은 허리케인이 이 지역을 휩쓸고 가면서 산산조각났다. 찰스 폰지는 자신이 약속한 수익이 차입금 증대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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