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1930년대의 대불황과 미국의 뉴딜

이정구 21 34
356 11 9
10/26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벌과 민즈는 1930년대 미국에서 부의 집중과 기업 집중이 극도로 심각했음을 보여 줬다.30 미국노총AFL을 포함한 노동조합이 제시한 경제 재건안도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해소에 맞춰져 있었다. 루스벨트가 집권한 직후는 경제 상황이 가장 심각한 때였다. 루스벨트는 서둘러 긴급 자금을 경제에 공급했다.

루스벨트는 전국산업부흥법NIRA에 따른 공공사업비로 33억 달러를, 농업조정법AAA에 따른 농산물 보상으로 5.92억 달러를 투입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긴급 구제 사업을 펼쳤다.31 루스벨트는 1933년 13개 주요 산업이 소재한 주의 주지사와 함께 회의하는 자리에서 “임금의 계속적인 인하가 다른 고용주에 대한 부정 경쟁의 한 형식이 돼 노동자의 구매력을 감소시켜서 산업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지적했고, 1933년 7월 24일 노변담화에서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도록 하여 생산품에 대한 구매력을 증진시키도록 하는 것은 NIRA의 가장 핵심적인 정신이며 명백한 원리”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대표적인 뉴딜정책인 전국산업부흥법이나 농업조정법은 대중의 유효수요 확장을 목표로 했다.32 1933년에 입법화된 농업조정법은 농산물의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할 목적의 특별법으로, 경작 면적을 줄여 생산을 제한하는 대신 경작하지 않는 토지에 대해 보상을 해 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경작이 허가된 토지의 생산이 더욱 집약화되면서 과잉생산으로 말미암은 가격 하락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33

이처럼 1933~1935년 제1차 뉴딜정책의 특징은 정부의 자금살포였다. 특히 1934년의 재정지출 규모는 루스벨트의 취임 연도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는 자유낙하만을 겨우 면한 정도였다.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