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기본소득 ― 복지국가의 21세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장호종 1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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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험에 가입돼 있는 노동자들도 고려 대상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기본소득안들에서 보듯, 오히려 이들은 ‘특권층’으로 인식돼 증세의 주된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 기본소득에 대한 철학적 옹호》에서 ‘고용지대’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했다. 실업률이 높은 경제 내에서 일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특권이며, 따라서 이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23

기본소득의 핵심 타깃층은 그동안 복지 급여에서 배제돼 온 사람들, 즉 경제활동인구 중 사회보험과 공적부조 어느 것으로부터도 지원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취업 경력이 없어 사회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거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처럼 법적으로 피고용 상태를 인정받지 못해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해당된다. 이들은 노동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공적부조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기본소득론자들은 기존 복지제도가 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이 사각지대는 새 고용 형태와 함께 생겨난 면이 있지만 애당초 고용 형태 변화가 단지 기술발전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규제 완화의 일환(비정규직법 제정 등)이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이런 조처들은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를 줄이고 사회보험 진입 장벽을 만들어, 복지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과 분열을 조장해 임금 등 노동조건을 공격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예컨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신산업 종사자들도 아니고 실제 사용자도 존재하지만,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 사용자들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자성 인정 문제를 두고 수십 년 동안 싸우고 있는 이유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문제를 내버려두고 기본소득으로 뒷받침하면 된다고 여기는 것은 문제다. 이들에게는 최저생계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실업급여,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복지 비용을 삭감하려는 지배자들의 공격이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에게 더는 이윤을 가져다줄 수 없는 사람들의 복지를 삭감하는 데에서는 더욱 가차없었다.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대표적 희생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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