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흑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 미국 흑인 해방 운동을 중심으로

김준효 165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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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앨러배마주 몽고메리시 시내버스에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 좌석을 백인에게 양보하기를 거부하다 체포돼 투쟁이 시작됐는데, 파크스는 재봉 노동자였다. 또 이 운동의 최초 핵심 조직자였던 에드 닉슨은 고참 노동운동가였다.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은 전투적 흑인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노력 덕분에 널리 확산됐다. 그러나 이 운동의 정치적 지도력은 노동계급에 있지 않았다. 1930년대 말 공산당의 실패5와 제2차세계대전에 뒤이은 사회주의자 마녀사냥 때문에 그런 지도력을 공급할 정치 조직은 사실상 파괴된 상태였다.

흑인 중간계급 단체들이 운동의 방향을 주도했다. 이들은 가난한 흑인들의 분노와 교감하면서도, 백인(과 국가)의 “선의”에 호소한다는 전략을 사용했다. 26세 청년이었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그런 정치를 대표했다. 킹 목사는 이 운동을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기회라고 봤다. 비폭력 저항이 그 핵심 전술이었다.

이런 방식은 대대적인 사회적 충돌을 원하지 않는 흑인 중간계급에 적합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대개 가난하고 무장하지도 않은 데다 독자적 조직과 정치도 없던 흑인 노동자들도 이를 (목숨을 잃는 것보다) 안전한 전술이라고 여겼다. 고작 몇 달 만에 운동은 미국 남부의 상당 지역을 포괄하는 대중 행동으로 부상했다.

이후 흑인 대학생들이 (역시 1930년대 노동자 투쟁 전술에서 착안해) 연좌 시위를 주도했다. 1960년 백인 전용 간이식당에 흑인 학생 네 명이 며칠 동안 연좌한 시위는, 두 달 만에 남부 70여 개 도시로 번졌다. 여기 영감을 받아 북부에 있던 흑인들(과 일부 백인들)이 동참하면서 평등권 운동은 전국적 운동으로 도약했다. 이제 이 운동은 흑백 분리 제도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철폐하라고 요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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