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흑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 미국 흑인 해방 운동을 중심으로

김준효 165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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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후반에 이 운동은 남부 미시시피주에서 인종적으로 평등한 공교육 체계를 쟁취했고, 다른 몇몇 주들에서 소작농 부채를 탕감했다. 1868년 총선에서 흑인 하원의원 14명, 상원의원 2명이 배출됐는데 모두 남부 주에서 나왔다. 지방정부 선출직에도 흑인이 800명 넘게 당선했다.

그러나 북부 지배자들은 노예제를 임금 노동으로 대체하고 싶었던 것이지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전쟁 후 10년 만에 옛 남부 지주 대다수가 사면 복권됐고, 남부와 북부 지배자들은 인종차별적 테러 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이 활개치도록 묵인했다. 급진 공화주의자들은 처음에는 공화당 정치인들에, 나중에는 복권한 노예주들의 정당 민주당에 기대하다가 패배를 면치 못했다.

이 운동에 동참했던 남부 흑인들 상당수가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생겨난 북부로 도망쳤다. 다수는 하층 노동계급이 됐지만, 소수는 중간계급으로 진출했다. 그 과정에서 흑인 사이에서 계급 분화가 일어났다. 흑인 중간계급 역시 차별 받았고 더한층의 계급 상승은 제약받았지만, 흑인 노동계급·빈민에 견주면 상대적으로 나은 것이었다.

남부의 백인 소작농들도 공격받았는데, 한 통계에 따르면 1870년대 말을 지나면서 남부에서 투표가 가능한 만큼 재산이 있는 백인의 수가 반토막났다.

그 결과 미국 남부 여러 주에서 ‘짐 크로 법’Jim Crow Law으로 통칭되는 악명 높은 인종 분리 법들이 통과됐다. 지배자들은 이런 법들로 흑인과 백인들의 삶 전체를 분리해 단결의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했다. 이런 제도적 인종차별은 양차 세계대전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군대(미군)가 인종 분리적이었을 만큼 강력하게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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