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흑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 미국 흑인 해방 운동을 중심으로

김준효 165 34
353 11 9
10/18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한편, 닷지혁명적노동조합운동DRUM6처럼 ‘블랙 파워’ 운동과 노동운동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DRUM은 작업장 안팎에서 차별에 맞서기 위해 비공인 파업을 벌이며 성장했다. 그러나 DRUM 내부에서는 백인 노동계급과의 관계 문제를 두고 사회주의자들과 ‘블랙 파워’ 지지자들 사이에 긴장이 상시적으로 존재했다. 이 때문에 백인 노동자들이 흑인 노동자들의 피켓라인을 존중했는데도 DRUM은 동료 백인 노동자들과 연대 행동을 조직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런 약점 때문에 DRUM은 사측의 분열 시도에 매우 취약했다.

‘블랙 파워’ 운동은 흑인 분리주의라는 그 자체의 정치적 한계 때문에 ─ 가장 선진적인 분파조차 ─ 흑인 해방 운동에 백인 노동계급 대중을 동참시키는 데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지배계급은 급진적 흑인 해방 운동 세력을 고립시키고 마침내 분쇄할 수 있었다. 가장 뛰어난 지도자들 다수가 투옥되거나 살해됐다.

거리 운동이 사그라들면서, 평등권 운동 참가자들 다수는 이제 대안이 온건파밖에 남지 않았다고 여겼다.

주류화

온건파는 흑인이 기성 정치권 고위직에 진출(‘주류화’)해 국가 기구를 활용해서 인종차별적 사회를 개혁한다는 전략을 추구했다. 이전까지는 스스로의 시위나 운동 조직의 힘에 기대하던 적잖은 사람들이 이제는 고위직인 흑인에 기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는 신분 상승을 원하는 흑인 중간계급에 알맞은 전략이었다. 평등권 운동 덕에 흑인들이 그전까지는 진출할 수 없던 엘리트 기관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되면서, 흑인 중간계급의 규모가 성장했다. 1970년대 초반 5년 동안 흑인 3000여 명이 선출 공직에 새로 진출했다. 1960년대 린든 존슨 정부 때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적극적 우대 조처Affirmative Actions는 차별 반대 운동의 일부를 제도 정치로 포섭하기 위한 것들이었는데, 흑인 (상층) 중간계급의 공직 진출에도 도움이 됐다.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