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3호 2020년 3~4월호)

지난 호

일반 논문

중국, 티베트, 좌파

찰리 호어 8 33
350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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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종교적 고통은 현실의 고통의 표현이자 현실의 고통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피억압자의 한숨이자 심장 없는 세계의 심장이고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30

이 말은 1949년 이후 티베트의 경험에 딱 들어맞는다. 티베트에서 불교는 티베트인들이 중국 지배에 대한 반대를 표현하는 주요한 통로가 되면서 더 강화됐다. 점령에 반대하는 격렬한 항의가 운명과 고통을 받아들이도록 강조하는 종교로부터 힘을 얻는다는 사실이 모순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적 신념의 실질적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교가 소외뿐 아니라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도 표현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티베트를 50년 넘게 지배했지만,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로 돌아온다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 듯하다.

티베트와 좌파

좌파들 사이에서도 티베트 항의 시위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거의 모든 좌파는 항의 시위를 예상치 못했다. 쿠바공산당이 중국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31 거의 모든 공산당들이 쿠바공산당의 뒤를 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중소갈등이 오래 전에 끝났고, 대부분의 스탈린주의자들에게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중국 인민을 강력히 지지한다. 우리는 티베트 문제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이것은 우리의 완전하고도 무조건적인 연대다.” 이 선언이 베네수엘라와 중국 사이에 석유 거래가 늘어난 배경인 듯하다.32

하지만 마이클 파렌티33나 슬라보이 지젝34 같은 반자본주의자들이 중국의 지배가 평범한 티베트인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이를 옹호한 것은 정말 충격적이다. 이들의 주장은 일부 좌파들이 중국에 대한 아무리 작은 비판도 불편해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뉴 스테이츠먼〉 기사에 대한 다음의 논평은 그 한 예일 뿐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개입하거나 침략하지 않고 그들이 선택한 대로 평화롭게 살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가 중국을 비판할 권리는 없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조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떠나는 것이다.35

물론 항의 시위에 대한 대다수 언론의 보도는 위선적이기 때문에, 이런 위선을 폭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티베트 점령에 반대하는 것과 이라크·아프가니스탄·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중국을 최강의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한 보루로 보는 대다수 좌파들의 견해에 맞서,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 ─ 우리는 그 어느 쪽 지배계급도 지지하기를 거부할 수 있다 ─ 라는 예전의 구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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