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지난 호

논쟁

홍콩 항쟁을 둘러싼 한국 진보·좌파 내 논점들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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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하 교수는 홍콩 정체성을 ‘홍콩다움’이라고도 표현했다. 이런 홍콩다움이란 무엇이고 또 언제부터 생겨났지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2014년 우산운동을 계기로 홍콩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홍콩 본토주의’localism 세력들은 중국 내륙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반감을 드러내며 중국과의 분리주의 경향을 드러냈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홍콩의 대다수는 자신이 중국 국적을 지녔거나 중국인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홍콩의 진보 및 좌파 세력들은 1989년 톈안먼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 정부에 분개하고 중국 내륙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또한 1999년 나토군이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을 폭격했을 때 홍콩에서도 반미 시위가 일어났다. 또 2003년 홍콩 대중은 중국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의 성공을 보며 기뻐했고, 우주인 양리웨이가 홍콩을 방문했을 때 열렬히 환영했다.18

몇 가지 사례로 볼 때 대략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다수 홍콩인들은 중국과 구별되는 홍콩 정체성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았고, 홍콩 본토주의 경향은 미미한 존재였다. 2012년 중국 정부는 국민윤리교육을 홍콩의 교과과정에 포함시키려다 저항에 부딪혔고, 2014년에는 행정원장 직선제 약속을 어기면서 우산운동을 촉발했다. 이 운동 내에서 분리주의 경향을 띠는 홍콩 본토주의 세력들이 급속하게 성장했다.

정체성이란 고정된 관념은 아니다. 또 홍콩 정체성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홍콩의 정체성을 1970년대에 홍콩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때부터 또는 1969년 마오쩌둥주의자들이 주도한 홍콩 반란 등에서 찾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홍콩 본토주의 경향을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다. 홍콩에는 본토박이도 있지만 중국 내륙에서 온 이주민들도 많이 살고 있다. 그런데 이주민이 중국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 캐리 람과 시진핑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홍콩 본토박이들이 모두 범민주파인 것도 아니다. 리카싱 같은 홍콩의 부자들은 친중 입장이고 항쟁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중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투쟁에 연대해 주기를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로는 홍콩과 중국의 노동자 계급을 단결시키지 못한다.19 홍콩 정체성 또는 홍콩 본토주의는 홍콩과 중국 그리고 홍콩 내에서 친중 입장의 노동자들과 민주파 노동자들을 분열시킬 뿐이다.

대안

김정호는 홍콩이 민주주의가 고도로 실현된 사회라고 생각한다.20 무장 경찰이 비무장한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하고 백주 대낮에 경찰의 사주를 받은 흑사회가 시위대를 폭행하는 사회를 두고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홍콩 대중의 민의가 번번이 무시되고 행정장관과 입법회 의원들을 직접 선출하지 못하는 사회를 두고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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