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4호 2020년 5 ~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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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홍콩 항쟁을 둘러싼 한국 진보·좌파 내 논점들

이정구 21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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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시위대들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사주를 받고 있는가 하는 것도 논점이다. 김정호는 “홍콩에서 여러 해 동안 경영해 온 CIA는 이미 홍콩 사법부, 교과서, 금융 그리고 독점과두세력에 침투해 있”으면서 시위대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시위 주모자들이 미국 영사관 인물과 만난 것을 예로 들었다. 물론 미국은 홍콩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비밀 스파이 활동을 벌여 왔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비밀 스파이 활동을 하는 자가 시위대 내부에 있다고 해서 시위대 전체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데모시스토당의 조슈아 웡은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 미국이 홍콩에 개입해 줄 것을 호소했고 시위에 참가한 일부 인사는 미국의 민주주의를위한국가원조기금NED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다. 그런데 그렇다 할지라도 시위대 전체가 친서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위대 속에 극소수가 성조기나 유니언잭 깃발을 들고 나왔다고 해서 그 시위 자체가 친미 또는 친영 입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시위를 조직한 민간인권전선의 어떤 간부가 친서방 입장이라고 해서 그 시위대를 모두 친서방 입장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설사 시위대의 대다수가 서방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에 환상이 있다 하더라도 이 때문에 운동을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운동을 분석할 때는 이데올로기 만이 아니라 그 운동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홍콩 민중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반감을 표했고 정치적·시민적 권리 방어를 위해 투쟁했다. 따라서 설사 그 운동의 이데올로기에 한계가 있더라도 투쟁에 대해서는 분명한 지지를 보내야 한다. 또한 운동 세력이나 정치 단체에서 그 지도부와 지지자들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존재한다는 점을 봐야 한다. 정의당 당원들을 모두 심상정과 같다고 여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정치단체조차 이럴진데, 특정한 쟁점을 중심으로 모인 시위대는 그 의식의 불균등성이 더할 것이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이하 노사과연]도 홍콩 항쟁 세력들이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사주를 받았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6 그런데 노사과연은 중국을 “고도로 발전한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7라고 보기 때문에 중국을 사회주의로 보는 김정호와는 이견이 있다. 하지만 노사과연은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는 아니지만 홍콩 시민을 포함한 모두가 중국을 사회주의 사회라고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사과연은 홍콩 대중의 시위가 사회주의라고 알고 있는 중국에 반대하는 투쟁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반대와 미국 제국주의 지지 행위라고 주장한다. 기묘하게도 노사과연은 김정호와 마찬가지로 투쟁이나 운동의 실질적 내용을 보지 않고 그 이데올로기로만 판단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 하나의 주장은 홍콩 시위가 설사 친미적이지는 않더라도 중국 체제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 또는 민중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입장도 존재한다.8 그러나 옛 소련이나 동유럽 또는 중국이나 북한 같은 사회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권력을 가진 사회이다. 그러나 소위 사회주의라고 일컬어진 나라들에서 조국 방어라는 명분을 내걸고 내부의 이견자들을 탄압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국가안전법家安全法9 등을 통해 반대세력들을 탄압하거나 제거하고 있다. 중국은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는 1989년 톈안먼 항쟁에 대한 폭력 진압에서부터 작게는 우칸촌 농민들의 저항에 대한 탄압 그리고 최근 자스커지 노동자들의 투쟁과 이에 연대하는 학생들에 대한 탄압 등 수없이 많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소위 사회주의라 불리며 노동자 국가 또는 인민민주독재라고 표방하는 국가들은 정작 노동자나 인민들의 근본적 이익은 도외시하는 일을 벌여 왔다.

사실 중국은 모종의 사회주의 또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 변종인 국가자본주의 체제다. 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제국주의적 세계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다른 국가와 생존을 위한 경쟁을 벌여야 했고, 이 때문에 국내적으로 노동자와 농민들을 착취해야 했고, 그 잉여는 대중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축적을 위해 사용해야 했다. 중국을 모종의 사회주의로 보는 한국의 대다수 좌파들은 중국 내에서 벌어져 왔던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착취와 자본들의 경쟁을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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