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2호 2020년 1~2월호)

지난 호

쟁점:지금의 이슈들

이주, 이주노동자 그리고 자본주의

제인 하디 157 32
340 9 7
8/12
프린트하기 전체 보기 PDF 보기

‘청소부를 위한 정의’ 운동은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주요한 성공 스토리다. 이것은 전미서비스노조SEIU를 재건하기 위한 톱-다운 전략의 일부였지만 현장 활동가들은 투쟁에 이주노동자들을 연루시켰다. SEIU 조직자 중 한 명은 이것을 “고용주[청소업 하청업자]와 건물 소유주에 맞서 모든 전선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전쟁”이라고 정의했다.53

켄 로치는 영화 〈빵과 장미〉에서 전투적인 시위, 경찰의 폭력적인 대응, [언론의] 떠들썩한 선전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종종 조직화에 따르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다. 한 조직자는 ‘청소부를 위한 정의’ 운동에서 엘살바도르인들이 수행한 역할을 설명하며 이런 말을 인용했다. “거기[엘살바도르]서는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살해당할 것이다 … 여기서는 시급 4.25달러짜리 일자리를 잃을 뿐이다.”54

현장 조합원들 자신이 조직한 투쟁도 중요했다. 1990년에 1세대 남미 이주민들이 미국 경마 장비업체에서 자발적인 파업을 벌여 더 많은 임금과 건강보험, 그리고 노조 인정을 쟁취했다.55 1992년에 멕시코 건설 이주노동자 수천 명이 여러 달의 준비과정을 거쳐 로스엔젤레스에서 멕시코 국경까지 주택 건설을 멈추는 다섯 달 동안의 파업을 벌여 더 많은 임금을 얻는 굉장한 승리를 쟁취했다.56

이런 투쟁들의 교훈은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도 뭉칠 수 있고 스스로 행동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속한 산업 부문의 노동조합들은 조합원이 매우 적거나 아예 없기 일쑤였다. 건설업의 경우 고용주들은 노동조합을 거듭 공격했다. 영어도 잘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협박, 폭력, 추방 위험을 뚫고 승리했다.

2006년에 미국의 모든 대도시에서 (그리고 많은 소도시에서) 대규모 메이데이 집회가 열렸다.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집회에 참가해 이민 통제를 강화하고 미등록 노동자를 범죄인 취급하는 정부의 법안에 반대했고, “우리는 정의와 사면을 원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닫기
x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