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8호 2018년 11~12월호)

지난 호

쟁점:현재의 이슈들

몰락의 전설 ― 장기 침체, 양극화와 극우의 성장,혁명적 좌파의 과제

알렉스 캘리니코스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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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lex Callinicos, ‘Legends of the fall’, International Socialism 160(Autumn 2018)

번역 차승일

2018년 9월 15일에 10주년을 맞은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 리먼 브라더스 파산은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1 그러나 그 관심의 초점은 이 사건에 있지 않았다. 실제로 프랑스계 은행 소시에테 제네랄의 앨버트 에드워즈는 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의미가 과장돼 있다고 주장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금융권의 기능은 정지됐다. 많은 사람들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그에 뒤이은 깊은 경기 침체의 요인으로 봤고, 그래서 그 중요한 한 사건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솔직하지 못한 얘기이고, 호경기에 취해서 금융 위기와 경제 불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후 정당화인 경우가 흔했다. 그중에는 정책 입안자들도 있었다.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기 전부터 미국 경제는 이미 심각한 불황에 빠져 있었다. 2008년 9월 미국의 종업원 수는 44만 3000명이 줄었는데, 바로 전달인 8월에도 27만 7000명이 감소했다. 종업원 수는 [2008년] 2분기에 평균 19만 명이 줄었다. 비록 감소 폭은 다시 줄었지만, 2008년 9월 당시에도 [비농업 부문 종업원 수는 ― 캘리니코스] 15만 9000명 감소한 것으로 기록돼서, 그 해에 일자리 60만 개가 사라졌다.(2008년 9월 통계 수치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기 전에 수집된 것이어서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2

이 논평은 관련 논쟁의 주요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바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절정에 이른 금융 위기와 2008~2009년 세계경제를 휩쓴 대불황의 관계이다. 그런데 모두들 그 대불황을 뒤이은 회복이 취약했고 또 다른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자유주의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는 이 위기에 관한 방대한 비판적 역사서 《붕괴》에서 이 주제를 체계적으로 다룬다. 유로존 위기가 2012년에 최악의 국면을 지난 이후 형성된 중론衆論, 즉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2008~2009년에 은행들에 구제 금융을 제공하고 양적 완화 ―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을 [중앙은행이] 매입해서 [풀린 돈이] 신규 투자 자금으로 쓰이도록 촉진하는 조처 ― 를 시행한 덕분에 위기가 해소됐다는 관점에 투즈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제 우리는 2012~2013년의 기본 가정과는 달리, 위기가 사실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반복이 아니라 변이와 전이이다. … 2007~2012년의 금융·경제 위기는 2013년과 2017년 사이에 탈냉전 질서 전반의 정치적·지정학적 위기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것의 명백한 정치적 함의를 제쳐 놓아서는 안 된다. …2012년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은 중도적 자유주의의 승리도 틀린 것이었음을 시사한다.3

그래서 보통 “포퓰리스트”로 지목되는 용의자들인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 대통령] 도널트 트럼프, 인종차별적 우익[의 성장][2008년의] 위기와 대불황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 즉 세계적 경제·금융 위기 탓에 리오 파니치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정치적 정당성 위기’라고 부른 것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 잡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을 가리킴]가 다루는 주요 주제의 하나이다.4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어도 잘 꿰어야 보배이다.

위기를 이해하기

그래서 먼저 경제 위기를 살펴보자. 투즈가 보기로 이 위기는 자신이 “달러를 기반으로 한 대서양 양안 시스템”이라고 부른 것의 위기이다. 다시 말해, 이 위기는 주요 무대와 진원지가 뉴욕과 런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여진히 우기는 것과 달리) “앵글로색슨”의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투즈는 1970년대 초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진 이래,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 동안에 미국과 유럽이 하나의 “금융 순환체계” 속에 한데 묶이게 됐다고 주장한다. 미국 은행들과 유럽 은행들은 모두 일차적으로는 수익성이 좋은 미국 시장에서 돈을 빌려 주기 위해, 미국에서 또는 1950년대 이후로 시티오브런던[영국 금융 중심지]에서 발전한 역외 달러 시장에서 돈을 빌렸다. 실제로, “21세기 초 국제 은행권의 전체 구조는 대서양 양안 중심적이었다. 새 월스트리트는 지리적으로 [뉴욕] 맨해튼의 남쪽 끝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것은 북대서양을 포괄하는 시스템이었다. 둘째 매듭은 시티오브런던인데, [지리적으로는] 뉴욕에서 떨어져 있지만 뉴욕과 떼려야 뗄 수 없이 통합돼” 있었고 월스트리트보다 규제가 약하다는 유리함이 있었다.5

그러나 ‘1986년 빅뱅’ 이후 시티오브런던에서 유력하게 성장한 스위스·독일·프랑스·네덜란드계 대형 투자 은행들은 ― 독일의 란데스방켄처럼 규모도 작고 영업 범위도 좁은 은행들도 ― 미국 자산 시장에 거품이 생긴 2000년대 중반에 이윤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기지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달러를 빌리는 일에 점점 더 깊이 관여했다. 투즈는 다음과 같이 쓴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금융 시스템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에서 근무하는 애널리스트들의 말처럼, ‘글로벌 헤지펀드’처럼 돈을 짧게 빌리고 길게 빌려 주게 됐다.”6 유럽 은행들은 1999년 유로화 도입을 뒤따른 신용 호황 때 이 모델을 차용하면서 유럽 대륙 전역에서 자산 거품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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