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29호 2019년 1~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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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오바니 아리기 외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 ─ 세계 패권의 이동을 통해 본 자본주의의 역사

백은진 1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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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바니 아리기 외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2008)

이 책의 원제는 “Chaos and Governance in the Modern World System”으로, ‘근대 세계 체제 속의 대혼란과 통치’라고 번역할 수 있다. 원제에도 ‘근대 세계체제’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듯이, 저자인 지오바니 아리기는 이마누엘 월러스틴, 안드레 군더 프랭크와 더불어 세계체제론1)의 대표적 이론가다. 그는 《장기 20세기》(1994)를 통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장기 지속의 시간 동안 패권 국가는 주기적으로 교체된다는 주장을 폈고, 뒤이어 1999년에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를 발간해 헤게모니의 순환을 강조했다.

아리기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자본주의를 “체계적 축적 순환”으로 볼 필요성을 제기했다. 페르낭 브로델이나 이마누엘 월러스틴처럼 아리기도, 자본주의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는 논점을 반박하면서 14세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제노바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특히 제노바(1340년대~1630년경), 네덜란드(1560년경~1780년대), 영국(1740년경~1930년대), 미국(1870년경~?)으로 헤게모니가 순환했다는 것이 아리기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이윤율이 저하해서 이윤율과 이자율이 역전되는 국면에는 과잉축적 위기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물질적 팽창이 중단되면 금융적 팽창을 통해 이윤율 저하를 만회하려는 시도가 등장한다. 이 때문에 투자 지역을 이전하려는 시도들이 늘어나면서 금융적 교란이 일어나는데, 이는 결국 경합지역에서 유리한 조건을 누리는 세력의 등장과 함께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합을 낳는다. 이로써 국가 간 체계의 질서가 무너지는 대혼란(Chaos)이 발생하고, 결국 새로운 축적 체제 하의 새로운 패권 국가가 등장한다.2)

아리기는 이 책에서 18세기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의 세계 패권의 이동,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세계 패권의 이동을 고찰해 두 차례 완료된 패권 이동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했다. 또, 새로운 패권 국가가 등장할 것인가, 세계화가 국가의 힘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약화시켰는가, 사회 변화를 위한 ‘하위집단’의 능력은 유효한가, 서양 문명과 비서양 문명 사이의 세력 균형의 변화가 올 것인가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금융 팽창, 기업 변천, 사회 갈등, 문명 충돌

아리기에 따르면, 패권의 위기는 국가 간·기업 간 경쟁이 격화하고 사회 갈등이 고조될 때 나타난다. 자본의 과잉축적과 유동 자본을 얻으려는 국가 간 경쟁으로 금융 팽창이 일어난다. 이 주장은 페르낭 브로델의 연구에 기초하고 있는데, 상품 형태를 벗어던지고 화폐 형태를 취함으로써 유동성을 되찾으려는 자본의 반복적 경향이 13세기 이탈리아 제노바부터 오늘날의 서양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는 것이다.3)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수립된 유럽의 주권 국가 체제는 네덜란드 패권의 주요한 기반이었다. 아리기는 네덜란드가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지정학적인 측면을 고려해 해상권 장악을 시도한 점은 패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선택이었지만, 영국과 네덜란드 간의 전쟁으로 제해권이 영국에 넘어가자 위기에 빠진 네덜란드는 마지막 피난처로 대형 금융을 선택했다고 본다. 또한 영국은 산업적 기반과 제국적 기반을 토대로 발전했지만, 19세기 말 공황이 발발하자 대부업과 투기로 활로를 찾고자 했다. 다시 말해, 네덜란드 제국이 쇠퇴할 때도, 영국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갈 때도 금융 팽창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리기는 패권 이동의 시기에 나타나는 금융 팽창을 두고 브로델의 표현을 빌려, “가을의 표지(sign of autumn)”라고 불렀다. 금융 팽창이 특정 패권 아래서 성립한 자본 축적 과정의 성숙기를 나타낼 뿐 아니라,4) 곧 그 패권이 종말을 맞이할 것을 상징하는 하나의 신호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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