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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현재의 이슈들

흑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 미국 흑인 해방 운동을 중심으로 *

MARX21

  • 이 글은 노동자연대가 6월 12일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개정·증보한 것이다.
  1. 관련 논의는 김준효 2020을 보라.
  2. 이에 관한 일반적 논의는 글룩스타인 2018을 보라.
  3. 관련 논의는 시모어 2011을 보라.
  4.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김인식 2020을 보라.
  5. 닷지는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주요 사업부다.
  6. Marable 1993.
  7. 그러나 1992년 LA 소요는 흑인뿐 아니라 백인·라틴계도 참가한 다인종적·계급적 소요였음을 유념해야 한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 소요를 “미국 최초의 현대적 다인종 반란”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역시 이 점에 관해 다루며 영국의 1981년 소요에 관한 고 크리스 하먼의 분석을 원용했는데, 하먼은 경찰의 인종차별을 계기로 점화됐던 현대 영국의 소요들이 사실상 모두 다인종적이었다고 지적하면서 그 요인으로 경제 위기와 실업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꼽았다(Callinicos 1992; Harman 1981).
  8. 캘리니코스 1994, p145.
  9. 캘리니코스 1994, p145. 그러나 당시 미국 노동계급 내의 인종 간 분열은 노동조합 운동에도 반영됐다. 당시 산업 투쟁으로 급성장한 AFL 내 노동조합 관료층은 이 분단선을 기껏해야 묵인하고 더 나쁘게는 적극 부추겼다. 이 분열은 이후 AFL을 기반으로 사회당이 창당된 후에도, 그리고 1920년대 초 미국 노동운동이 결정적 패배를 겪을 때까지도 극복되지 못했다. 당시 사회당 안에서 인종과 출신을 뛰어넘는 계급 단결을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유진 뎁스 한 명뿐일 때도 있었다. IWW는 작업장 내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인종을 뛰어넘어 단결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예외였지만, 작업장 바깥의 정치 운동에는 별다른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 미국 남부에서 짐 크로 법에 맞선 투쟁이 벌어졌을 때나 북부에서 흑인 빈민들의 운동이 벌어졌을 때도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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