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본 청년 문제와 공정성 ─ 왜 문재인 정부에서도 불공정성은 여전한가?

양효영 170 36
365

9월 19일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 연설에서 대통령 문재인은 “공정”이라는 단어를 무려 37번이나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가 불공정하다는 청년층의 불만을 의식한 것이었다. 연설은 온갖 정책 성과 부풀리기와 감언이설로 청년들을 달래 보려는 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이미 조국 사태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 연설에서도 문재인은 공정을 27번 언급한 바 있다. 정부가 말로는 공정을 말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고 청년들의 불만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이다.

문재인의 연설에는 교묘한 책임 전가와 이간질도 곳곳에 있었다. 문재인은 “하나의 공정이 다른 불공정을 초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라는 “공정”이 청년 취업 기회 박탈이라는 “불공정”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책임은 사라지고 비정규직과 미취업·실업 상태의 청년 사이의 갈등이 본질인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또한 문재인은 청년들에게 세계 무대에서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도전, 노력, 패기, 열정 … 전임 우파 정부들에서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얘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의 날 기획이 탁월했다는 탁현민 청와대 행사기획 자문위원의 자화자찬과 달리, 20대의 대통령 지지율은 금세 떨어졌다. 특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군 복무 기간 휴가 특혜 의혹이 쟁점화되면서, 20대에서 지지와 반대 여론이 교차하는 ‘데드 크로스’가 나타났다. 9월 말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 평가한 이유를 묻는 항목에서 ‘공정하지 못함·내로남불’을 이유로 꼽은 응답자는 10퍼센트로 전 주보다 5퍼센트포인트가 늘었다.

문재인 정부 하의 청년 현실

2017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문재인은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는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고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 약속과 정확히 반대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특권·부패 의혹이 그랬다. 딸 대학 입시를 위해 “스펙”을 조작하고, 청와대 민정수석 지위를 이용해 사모펀드에서 큰 차익을 본 것은 전형적인 특권층 부패였다.

또, 문재인 정부는 집값 상승으로 불안해 하는 서민들에게는 빚 내서 집을 구매하지 말라고 하고는, 정작 청와대 비서관 다수가 다주택자였고 집값 폭등으로 수십억 원씩 재산을 늘렸다.

이런 위선의 극치 속에 정부가 약속한 개혁들은 이뤄지지 않았다. 평범한 청년들의 삶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문재인은 청년들에게 일자리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식 청년 실업률은 박근혜 정부 때와 거의 비슷한 8~9퍼센트 수준을 유지했다.

문재인은 반값 등록금을 공약했지만 지난 3년간 평균 등록금은 오히려 올랐다. 2017년 665만 원 → 2018년 667만 원 → 2019년 669만 원 → 2020년 671만 원.1 여기에 변변치 못한 주거 환경까지 촛불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체감하기 어렵다. 경제 위기에다 코로나19까지 겹쳐 최근에는 청년층 삶에 대한 각종 지표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통계청의 8월 고용 동향을 보면, 청년층 취업자는 지난해 동월 대비 17만 2000명이나 줄었다. 청년층 확장실업률은 24.9퍼센트로 지난해 동월 대비 3퍼센트 증가했다. 청년 중 약 224만 명이 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아예 구직을 단념한 청년들도 급증했다. 20~29세 청년 중 그냥 “쉬었다”고 답한 사람이 43만 명으로 지난해 대비 8만 명이나 늘었다. 통계청은 고용이 전반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20대와 40대에서 타격이 크다고 봤다.

게다가 경기 회복에 대한 비관 때문에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고 있다.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의 조사를 보면 매출 500대 기업들 중 무려 70퍼센트가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이 없거나 아직 미정이다. 그리고 신규 채용 계획이 있더라도, 대체로 경력직을 뽑는 수시 채용 비중이 커질 전망이다.

코로나19 시기 청년들의 경제 사정도 급격하게 악화돼, 최근 한 조사를 보면 20대의 대출액과 연체액 모두 다른 연령대보다 급증했다. 대체로 학자금이나 생계비 마련 목적으로 대출이 늘었는데, 코로나19로 채용이 줄고 아르바이트 해고는 늘어 대출 이자나 원금을 제때 갚지 못해 발생한 연체가 상당히 늘었다.2

이런 상황 때문에 청년층에서 우울증이 증가하고, 자살 시도가 급증하고 있다는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정부도 전임 우파 정부와 다를 바 없이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 있음이 속속 드러나자, 대중이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는 건 당연했다. 이런 반응을 두고 정부·여당과 친여 언론들은 모두 “가짜 뉴스” 탓을 하면서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정부·여당이 합심해서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권력자들을 감싸고, ‘이 정도는 관행’이라며 자신들의 별세계를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청년들이 우롱당했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정부의 개혁 배신과 친기업 규제 완화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불공정’ 문제로 표현되곤 했다. ‘공정성’ 제기는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것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이기도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권 인사들은 한편으로는 청년들을 달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집단 이기주의나 엘리트주의라고 매도했다. 지난해 대학생들의 조국 임명 반대 시위 때 유시민은 “뒤에 자유한국당 패거리의 손길이 어른어른한다”며 그 시위의 배후에 우파가 있는 양 말했다.

물론 일부 청년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20대들이 원래 이기적이고 보수적인 엘리트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2017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일자리 정책 관련 조사를 보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전 연령대 중에서 20대가 가장 높았다. 비정규직 차별 금지와 처우개선에 대해서도 다른 연령대와 비슷한 지지를 보였다.3

이런 설문 조사 결과는 그로부터 3년 뒤에 벌어진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와 상당히 다른 인식 차이를 보여 준다. 이런 차이의 근원에는 20대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이 있다.

‘인국공 사태’

‘인국공 사태’라는 어수선한 논란이 벌어진 핵심 원인은 문재인 정부가 말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개혁을 위한 재정 투자에 매우 인색한 것에 있다.4 문재인 정부는 돈 들어가는 개혁은 어떻게든 피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청년, 정규직을 서로 갈등시키는 방식으로 분열을 부추겨 왔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민간 기업들은 채용을 꺼린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도 일자리 확대와 정규직화를 위한 예산 증액에 극도로 소극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예산 문제가 최대 쟁점이 됐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을 위한 예산을 지원하지 않았고, 각 기관별로 알아서 정규직화에 드는 재원을 마련하라고 했다. 또한 “추가 재원 없는” 정규직화를 기조로 삼았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되거나 자회사로의 간접고용을 강요받았다. 게다가 재정 최소화 기조 때문에 신규 채용도 크게 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초반에 공공부문 채용을 대폭 늘리겠다고 했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채용 확대 기대감을 갖고 공무원,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의 경우 박근혜 정부 때(4만 1500명)와 비교해 신규 채용이 두 배로 늘긴 했지만(8만 명), 필요 인력만큼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현장의 인력 부족은 계속됐다. 공공기관 신규 채용도 박근혜 정부(2013~2016년 약 8만 명)에 비해 약간 늘었을 뿐이다(2017~2020년 2분기까지 약 10만 명). 청년들 입장에서는 증원 효과가 별로 체감되지 않는 수치다.

재원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군비 증가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2배가량 높았다. 경제 위기 와중에도 문재인 정부는 향후 5년 동안 군사비에 301조 원을 쓰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코로나19 시기에 정부는 기업을 살리겠다면서 500조가 넘는 돈을 지원했다. 결국 재정 문제는 우선 순위의 문제다.

정부가 기대심을 높였지만 채용 인원 증원은 미미하니,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과 공공기관 취업 경쟁이 더 격화됐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일자리 재정을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들 사이에서, 또 노동자와 취업 준비 청년 사이에서 한쪽의 조건 개선이 다른 쪽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 취업 준비 청년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인해 취업문이 좁아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부 청년들이 ‘인국공 사태’ 때 정규직화에 울분을 터뜨린 배경에는 문재인의 연이은 개혁 배신, 그리고 이어진 위선과 기만이 누적된 상황이 있다.

공정한 경쟁?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해 좌파적 이데올로기가 취약한 상황에서 많은 청년들은 십수 년간 입시 경쟁을 경험하며 공정한 경쟁 논리를 상식처럼 여긴다.

물론 ‘공정성’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라서 사람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양하다. 그럼에도 대체로 경쟁의 룰이 공정해야 한다는 점으로 수렴되는 듯하다. 즉,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하면 정의로운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표현된다. 이런 믿음에 근거해 적잖은 청년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노력에 대한 보상”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쟁의 ‘공정성’ 논리는 평범한 청년들의 고통을 보상해 주지도, 그들이 원하는 조건 향상을 가져다 주지도 못한다.

자유주의자들은 공정한 경쟁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의로운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개인을 상정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애당초 불가능하다. 이는 자본주의가 계급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철저하게 불공정한 경쟁을 하게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자녀와 노동계급 자녀들이 공정하게 경쟁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계급적 차이 때문에 똑같은 규칙이 적용되는 입시를 비롯해 각종 시험들이 부잣집 자녀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컨대, 고소득층 자녀가 저소득층 자녀보다 수능에서 더 높은 등급을 5배 가까이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상위 소득 5분위 부모의 자녀 11퍼센트가 수능에서 1~2등급을 받는 반면, 하위 소득 1분위의 자녀는 2.3퍼센트만 1~2등급을 받았다.5 경기도교육청·경기도교육연구원이 발간한 《통계로 보는 교육정책》(2015)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최고소득 가구와 최저소득 가구 학생의 평균 수능 점수는 최대 43점가량 차이가 났다. 특히 외국어영역(영어) 점수 차이가 가장 컸다. 이는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부유층은 규칙의 허점도 더 잘 알고 있고 이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다. 권력이 막강하면 있는 죄도 없앨 수 있다. 예컨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은 군 휴가 기간 종료 후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는데,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서 사후 휴가 연장 처리가 됐다. 평범한 집안의 아들이었다면 탈영으로 간주돼 처벌받았을 일이다. 심지어 법무부 장관인 엄마 추미애는 아들의 사건 담당 검사를 좌천시키며 수사를 방해했다.

다시 말해, 경쟁은 진공 속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연계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개인의 노력보다 결과에 훨씬 더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그 결과가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미 불평등이 근저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게임의 룰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유다.

예컨대, 입시 제도에서 정시 비율을 확대하더라도, 학생부 비율을 확대하더라도 부유층 자녀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 서울대에 정시로 입학한 학생 중에는 강남·서초 지역 학생들이 월등히 많다. 조국 자녀 특혜가 보여 주듯이 인턴십, 해외 경험 등 학생부를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경력 또한 부유층에게 유리하다.

무엇보다, 계급으로 분단된 사회에서 모두에게 불편부당하고 공정하게 적용되는 ‘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은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예리한 농담은 현실을 잘 보여 준다.

따라서 경쟁이 공정하다는 건 신화에 불과하다. 지난 20년간 한국 자본주의는 더욱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되고 노동시장을 비롯해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경쟁이 더욱 강화됐지만 정의는커녕 불평등이 더 심화했다.

토마 피케티와 같은 방법으로 개인의 자산 분포를 추정한 김낙년 교수(동국대)의 통계를 보면, 2010~2013년 상위 1퍼센트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25.9퍼센트에 이른다. 빈부 격차는 1990년대 이후 점점 더 벌어져, 현재 한국의 소득과 자산 집중도는 국제적으로 두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6

불평등 증대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토마 피케티가 쓴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보면, 2018년 기준 소득 상위 10퍼센트가 미국에서는 국민소득의 48퍼센트를 차지했고, 유럽에서는 34퍼센트, 중국에서는 41퍼센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54퍼센트, 중동에서는 64퍼센트를 차지했다.

심지어 순수하게 육체적 능력만을 겨루는 것처럼 보이는 스포츠 경기도 마찬가지다. 2016년 올림픽에 출전한 207개 국가 중에 75개 국은 단 하나의 메달도 딴 적이 없다. 겨우 30개 국이 100개 이상의 메달을 땄고, 그중에서도 세 국가가 1000개 이상을 땄다(미국 2520개, 러시아 1865개, 독일 1681개). 빈곤이 신장과 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부터 공공시설과 국가 교육의 격차, 그리고 첨단 훈련 기구들을 제공할 수 있을 만한 국가에 사는지 여부 등 여러 요인들이 경기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공정한 경쟁 논리는 사회의 진정한 불평등은 가리고 경쟁의 결과에 따른 차별은 정당하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또한 모든 것은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탓이라는 생각을 강화한다. 이런 점에서 공정성 논리는 불평등한 체제에 근본으로 도전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가기 쉽다.

물론 부유층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도 극소수가 이 경쟁을 뚫고 상층부로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사례가 주목받는다는 것 자체가 그것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결과임을 보여 준다. 다수에게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주지 못하고 패배감과 고통만을 안겨 준다. 경쟁으로 인해 청년들은 파편화되고 심각한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착취와 불평등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이른바 ‘분수’에 맞는 삶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중세 서구에서] 왕· 영주·대주교·주교·기사·평민으로 이루어진 현세의 위계 질서는 천사·성인·인간으로 이루어진 천상의 위계 질서에 상응하는 것이었다.”7

반면, 자본주의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법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취급된다. 노동자들은 과거 노예나 농노처럼 지배자들에게 인신적으로 예속돼 있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는 체계적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뿌리 깊게 존재한다.

이 둘 사이의 심각한 모순을 파악하는 것이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불의한 체제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서 핵심 출발점이다.

이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입구에 쓰인 은밀한 생산의 장소”로 들어가야 한다.8 자유롭고 평등해 보이는 시장을 지나 생산 영역으로 들어서면, 착취 관계라는 자본주의의 핵심 불평등을 마주할 수 있다.

자본가들은 생산수단(토지, 공장 등)을 소유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한다. 노동력 판매 계약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두 개인 간의 약속 같지만, 전적으로 자본가에게 유리하다. 노동자가 먹고 살려면 자본가 계급에게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만을 임금으로 지급한다. 그리고 이런 착취를 통해 자본가들은 부를 쌓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경쟁 기업을 이기기 위해 어떻게든 착취율을 높이려 애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공정한 노동에 대한 공정한 임금’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역설했다. 왜냐면 임금 제도 자체가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고, 착취받을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착취 관계가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

이전 우파 정부만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도 불공정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민주당도 자본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기성 체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자본가 계급을 핵심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정당이다. 세 차례 집권을 통해 민주당은 지배계급 내에서 상당한 지지를 확보했다. 그래서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남한 자본주의 이익을 옹호하고,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고용 노동자와 청년 실업

오늘날 청년들의 고통은 실업과 크게 연관돼 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상태는 생계, 주거, 연애, 결혼 등 삶의 모든 부분에 나쁜 영향을 준다.

자본주의의 풍토병인 경제 위기는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악화시킨다. 위기에서 잠시 회복돼 호황이 와도, 이는 지속되지 않고 다시 경제 위기가 찾아온다. 그렇게 되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신규 채용을 줄인다.

더 근본에서 기업들의 이윤 경쟁 자체가 청년층을 실업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산적인 기술에 투자를 늘리고, 노동 절약적 기술을 도입한다. 이제 더 적은 노동자로도 같은 양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기업주들은 기존 노동자를 해고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실업자를 “상대적 과잉인구” 혹은 “산업예비군”이라고 불렀다. “과잉인구의 생산은 이미 취업한 노동자들의 축출이라는 훨씬 눈에 띄는 형태를 취하거나, 추가적 노동인구를 통상적인 통로를 통해 흡수하는 것이 더욱 곤란해지는 형태를 취한다.”9

마르크스가 지적한 후자의 방식이 청년층 등 추가적 노동인구가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더 어려워지게 만드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청년을 채용하더라도 경기 변동에 따라 훨씬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한다.

이런 산업예비군의 존재 덕분에 기업주들이 기존 노동자를 더욱 쥐어짜기가 수월해진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노동계급 일부에게 과도노동을 시킴으로써 나머지 부분을 강요된 나태에 빠지게” 하고, 또 그 반대로 “산업예비군 때문에 취업자가 과도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취업 노동자와 실업 청년의 이익이 상충한다는 식의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의당의 정의론

지지 기반과 정책 모두에서 정의당을 민주당의 2중대로 보는 것은 잘못됐다. 민주당이 자본가 정당인 반면, 정의당은 개혁주의적 노동자 정당이다. 정의당의 정책은 민주당에 비해 진보적인 것들이 많다. 정의당은 노동계급과 평범한 청년의 삶과 조건을 개선하려 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지지하고, 복지를 늘리고 사회 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원 마련에서도 부유층과 기업의 의무를 요구한다.

청년 문제에서도 정의당은 자본주의 거대 양당(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청년 문제를 선거용 이벤트로 소모하는 것을 비판해 왔다. 실제로 자본가 정당들이 청년들이 겪는 불공정과 소외를 진지하게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은 거듭 확인되고 있다.

정의당은 청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의당 같은 진보 정당을 성장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 방편의 일환으로 청년들을 공직과 당직에 중용하고 있다. 정의당 국회의원 6명 중 2명(장혜영·류호정 의원)이 청년 비례 몫으로 의원이 됐다.

청년들의 불만을 정치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어떤 정치냐가 더 중요하다. 정의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좀더 정의롭게 바꿀 수 있다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낳는 불평등한 결과에 대해 국가가 개입해 바로잡고 분배의 정의를 이뤄야 한다고 본다. 즉, 불평등의 원인인 착취 그 자체를 없애려 하지 않고 분배의 정의를 구현하려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했듯이, 착취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정의와 자본주의를 조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서로 다른 계급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상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정의당의 개혁주의 정치는 실제 현실에서 약점을 드러낸다.

정의당이 지도부가 대체로 지지하는 사회연대전략이 그 한 사례이다. 최근에 선출된 김종철 대표는 (공무원연금 삭감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연금 통합과 (임금 억제와 차별을 정당화할) 공공부문 직무급제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사회연대전략은 노동계급 내 좀더 나은 처지의 부문(고소득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이 노동계급 내부의 저소득층이나 청년 실업자들의 조건 개선을 위해 고용주에게 임금 등을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계급 내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좀더 나은 처지의 노동자들이 투쟁이 아니라 양보를 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해 계급투쟁에 악영향을 끼쳐 오히려 전체 노동계급의 조건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예컨대, 대표적인 대기업 고임금 노동자로 여겨지는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자제하자 현대차 하청업체와 부품회사들도 자신들의 노동자들에게 임금 압박을 가하기 쉬워졌다. 하청업체와 부품사 노동자들이 ‘양재동 가이드라인’(현대자동차 임금 협상 기준)에 가로막혀 임금 인상이 어려워졌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투쟁에 나서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처지에 있는 조직된 노동운동이 투쟁하지 않고 양보하면 오히려 미조직 노동자와 청년 실업자들의 조건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세대론? 세습론?

청년 세대가 겪는 불평등을 분석하고 답을 내놓으려는 시도가 계속 있었다.10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세대 간 격차에서 찾는 ‘세대론’이다. 다른 하나는 특권 대물림이 문제라고 보는 ‘세습론’이다.

세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계급과 세대가 거의 일치”(《불평등의 세대》, 이철승)한다면서 “386세대의 가해자성 인식이 필요하다”(《386 세대유감》)고 주장한다. 물론 오늘날 청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얻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기성 세대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황은 자본주의에 내재돼 있는 속성이고, 자본주의가 늙고 병든 요즘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확장될 때는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얻기 쉽다. 기업들은 팽창하는 시장에서 더 큰 이윤 몫을 차지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이에 필요한 인력들도 늘리며 심지어 노동력 확보를 위한 경쟁도 한다.

이렇듯 세대별 고용 환경은 자본주의 체제의 변동에 영향을 받고, 평범한 기성 세대 노동자 대부분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세대론은 기성 세대를 단일한 집단으로 보는 문제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비슷한 나이로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물질적 이해관계가 같다고 볼 수 없다. 물론 강렬한 동시대 경험으로 인한 비슷한 집단적 시대 인식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들 내에서도 정치적 분화가 생기고 계급으로 갈린다. 이른바 386이라 불리는 ”세대”에는 운동권 출신 민주당 정치인들(조국, 임종석 등), 재벌 후계자들(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의선 등), 벤처 자본가들(카카오 김범수, 넥슨 김정주, 안랩 안철수 등), 사교육 시장을 주름잡는 학원장들과 스타 강사들, 그리고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까지 매우 다른 계급 집단들이 존재한다.

세대론과는 달리, 세습론은 세대를 단일하게 보기를 반대하며 “20대 내부의 격차”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청년이 다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사는 게 아니고, 소수의 청년들은 부모 배경을 통해 부와 인적·문화적 네트워크 등을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조국 사태를 경과하면서 진보진영 내에서도 ‘세습 자본주의’, ‘계급 세습 사회’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세습론은 청년들이 아무리 “노오력”해도 소용없다는 “헬조선”, “금수저” 담론과 연결되는데, 이는 최근의 사회적 경험에도 얼핏 부합해 보인다.

남한 자본주의도 이제는 계급 간 이동의 역동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어도 많이) 줄었다. 김낙년 교수의 연구를 보면, 부의 축적에서 상속이 기여한 비중이 1980~1990년대 27~29퍼센트에서 2000년대 42퍼센트로 증가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보다 “용은 알에서 태어난다”는 말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더 잘 나타낸다.

그런데 세습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런 세습을 불평등의 원인으로 보고 이런저런 특권 세습을 타파하는 것에 주목한다. 특히 교육 불평등을 특권 세습의 중요한 매개 고리로 본다.

그러나 세습은 이 사회의 근본적 불평등(생산수단의 통제 여부)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소수가 이 사회의 생산수단을 통제한다는 사실 덕분에 소수 지배계급의 자녀들은 대다수 노동계급 자녀들은 상상도 못할 경제적·문화적·사회적 특권들을 누린다.

그런데 최근의 ‘세습론’은 세습이 자본주의 계급 사회의 본질과 별개인 것처럼 보는 약점이 있다. 그런 관점에 따르면 세습되지 않는 공정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다. 세습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기회의 평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세대론과 세습론은 모두 자본주의적 착취를 핵심 분단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소득, 교육 수준, 부동산 소유 등의 기준으로 상위 20대 하위 80(또는 10대 90)으로 나뉘어져 있다며 계급이 아닌 다른 분단선들을 긋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런 접근은 불평등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청년들의 불평등이 노동계급 일부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할 위험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경제 위기를 해결하려고 더욱 애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과 청년 등을 이간질하는 일도 계속 벌일 것이다. 이런 공격에 제대로 맞서려면 실업이 기성 세대 노동자들 때문이라고 보는 주장을 전면 거부하고, 실업 청년과 고용 노동자들의 단결을 위한 정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또, 경제 위기 시기에 사회의 자원은 한정돼 있다는 생각을 철저하게 거부해야 한다.

정부에 대한 분노가 급진 좌파적인 정치와 만나지 못하면 청년들의 불만은 여러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 현재 청년들 중에는 무당파층이 많다.11 그중 일부는 우파 지지로 갈 수도 있다.

이런 청년들을 왼쪽으로 급진화시킬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심각한 불공정, 그리고 청년 실업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성 그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는 정치를 가진 혁명적 조직이 더 커져야 한다.

MARX21
1 대학알리미
2 ‘6월 대출 및 연체 현황 분석’, 나라살림연구소, 2020.
3 ‘일자리 정책 관련 국민 여론조사 보고서’, 문화체육관광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더 많은,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매우+어느 정도)라는 응답자의 비율은 전체 평균 56.0%이며 만19-29세는 61.1%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비정규직 차별 금지 및 처우 개선’ 정책이 더 많은,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매우+어느 정도)라는 응답자의 비율은 전체 평균 65.6%이며 만19-29세는 64.8%였다.

4 양효영, ‘계속되는 ‘인국공 직접고용’ 논란: 문재인 개혁의 기만성을 보여 준다’, 〈노동자 연대〉, 332호.
5 최필선·민인식, ‘부모의 교육과 소득 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 2015.
6 김하영, 《오늘날 한국 노동계급》, 21쪽.
7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204쪽.
8 칼 마르크스, 제2편 6장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자본론》1 (상)
9 칼 마르크스, 제7편 25장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이 점점 더 생김’, 《자본론》1 (하)
10 양효영, ‘세대론과 세습론은 청년이 겪는 불평등을 설명할 수 있을까?’, 〈노동자 연대〉, 315호.
11 갤럽조사에 따르면 2020년 5~8월 전체 무당파층은 약 20퍼센트대에 머물렀지만, 20대 남성과 여성 무당파층은 훨씬 높았다.(20대 남/여 무당파층: 5월 40퍼센트/30퍼센트, 6월 45퍼센트/36퍼센트, 7월 44퍼센트/37퍼센트, 8월 43퍼센트/40퍼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