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호 (32호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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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르크스 캐피탈 리딩 인트로》, 에르네스트 만델, 이매진 ─ 《자본론》의 개념을 제대로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논점들

정선영 93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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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캐피탈 리딩 인트로》1는 펭귄 출판사가 마르크스의 《자본론》 1, 2, 3권을 영문판으로 출간할 때 에르네스트 만델(1923~1995년)이 썼던 서문을 모아 번역한 것이다. 만델은 《자본론》 1권의 서문은 1976년, 2권 서문은 1978년, 3권 서문은 1981년에 썼다.

만델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트로츠키주의 조직인 제4인터네셔널의 지도자로 활동했고, 다양한 저작을 쓴 바 있다. 만델은 옛 소련 사회를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동구권 사회를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로 보며 그 사회들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논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 논쟁을 다룬 책이 한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논쟁》2으로 출간됐다.

이 책에서 만델은 《자본론》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소개하고, 《자본론》 출간 이후 논쟁이 된 쟁점들을 다루며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만델은 “마르크스는 19세기보다 20세기에 더 적합한 경제학자”라며, 마르크스주의의 현대적 유효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만델이 글을 쓰던 20세기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마르크스가 설명한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마르크스가 밝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동학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자본주의의 상황을 분석하며, 이론과 실천을 더 한층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과제일 것이다.

이 책에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왜곡을 반박하는 유용한 내용들도 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이 계속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는 오해는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만델은 노동계급이 궁핍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가 논쟁을 벌인 당대의 여러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지닌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이 관념은 맬서스에서 시작해 리카도를 거쳐 마르크스하고 동시대를 산 라살 같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3

인구가 성장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임금이 저하할 것이라고 본 당대 경제학자들과 달리 마르크스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실질임금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은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계급의 “상대적 궁핍화 경향”은 커진다는 것이었다. 실제 역사를 보더라도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가치에 비해 더 적은 몫을 받아 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책에는 이와 같이 유용한 설명들도 있지만, 개념 상의 약점들도 눈에 띈다. 특히 《자본론》을 바탕으로 현대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 약점이 두드러진다.

제국주의와 국가

먼저 만델이 제국주의와 같은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들을 설명하는 방식은 너무 단순하고, 마르크스 사후 변화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만델은 제국주의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가치를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이전하는 거대한 통로(노동생산성이 낮은 나라에서 높은 나라로)로 기능하는 세계 시장은 제국주의 체제의 근간을 형성한다.”4 또 만델은 선진국이 비자본주의적 제3세계를 “강탈을 통해 축적”하는 것이 제국주의의 지배와 제3세계 저발전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5

그러나 제국주의를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경제적인 가치 이전 과정으로 보거나, “강탈에 의한 축적” 과정으로 보는 것은 제국주의의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후진국을 착취·수탈해서 얻는 부보다 지출하는 군비가 더 큰 상황에서도 제국주의 정책이 지속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거나 더딘 후진국들을 수탈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는 설명이 유효했다.6 그러나 제국주의 경쟁이 격화하면서 제국의 비용은 직접적인 물질적 이익보다 더 커졌다. 예를 들어 “1940년대 또는 1950년대의 어떤 단계에도 미국의 총 해외투자(그 투자에 대한 훨씬 작은 수익은 말할 것도 없고)는 미국의 군비 지출을 초과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발발 이전의 ‘군비 축소’ 기간에도 “군사비는 총계가 1년에 약 15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적 자본 수출 총액의 25배에 달할 뿐 아니라, 또한 해외 원조 총액의 몇 배에 해당했다.’”7

또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 지역은 이미 레닌이 살던 시대에도 농업 지역이 아니라 공업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제국주의의 특징은 단지 농업 지역뿐 아니라 심지어 공업이 가장 발달한 지역조차 병합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독일은 벨기에를 탐내고 프랑스는 로렌을 탐낸다).”8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 사후에 이론의 발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의 시기에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론을 발전시킨 바 있다.

레닌과 부하린의 제국주의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들 간의 경쟁 과정에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심화되며 그 규모가 커진다. 이는 소수 대기업이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며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융합되고, 이에 따라 자본들 간의 경제적 경쟁은 국가들 간의 정치·군사적 경쟁으로까지 발전한다는 것이다.

만델의 설명과 비교해, 이와 같은 제국주의론은 제국주의를 선진국 대 후진국의 구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 간 갈등을 핵심 동학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실제 20세기 초에 강대국들이 식민지 지배 경쟁을 벌인 배경에는 제국주의 국가 간의 경쟁이 중요한 동학으로 작동했다. 식민지를 하루 빨리 확대하지 않으면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압박이 제국주의 국가들이 더욱 경쟁적으로 군사몰이를 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기에도 두 강대국이 1만 개가 넘는 핵폭탄을 만들며 정신 나간 군사 경쟁을 벌인 이유는 경쟁에서 뒤처지면 자신의 세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그들이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했다. 오늘날에도 미국이 중동에서 군사 작전을 벌이고, 동아시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근본 이유에는 중국, 러시아, 유럽의 강대국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또 제국주의론은 종속이론이 범했던 오류도 피할 수 있게 한다. 종속이론은 제3세계 국가들이 ‘저 발전’을 겪을 것이라 예상하고 선진국들이 후진국을 수탈한다는 관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브라질, 남아공, 대만 등 제3세계 국가들이 경제 성장을 이룬 사례는 종속이론이 틀렸음을 입증한다.

이처럼 레닌과 부하린의 제국주의론에 기반해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만델이 레닌과 부하린의 기여를 인정하지 않고, 제국주의를 경제적 틀로만 협소하게 설명하며, 종속이론의 주장을 절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그의 약점이다.

이와 같은 약점은 국가의 성격을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돼 있는 듯하다. 이 책에서는 국가에 대한 성격 규정을 찾아 보기 힘들다. 물론 마르크스는 애초에 《자본론》을 기획하면서 국가에 대한 내용을 다룰 계획이었지만, 그 계획을 다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자본론》 2권에서 “정부가 광산·철도 등에 생산적 임금노동자를 고용해서 산업자본가의 기능을 하는 경우에는 국가자본도 … 개별 자본의 총합에 포함”시켰다.9

엥겔스는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 비스마르크가 독일 철도 체계를 국유화한 조처를 거론하며 이 점을 훨씬 더 자세히 설명했다.

형태가 어떻든 간에 근대 국가는 본질이 자본주의의 장치, 즉 자본가들의 국가로, 일국 총자본의 관념적 의인화다. 근대 국가가 생산력을 더 많이 장악할수록 그것은 그만큼 더 국가자본가가 되며, 그만큼 더 많은 주민을 착취한다. 노동자는 여전히 임금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적 관계는 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을 만큼 악화한다.10

오늘날 국가를 자본주의 외부의 기구로 보고 국유화를 확대하는 것을 통해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국가 영역의 확대를 통해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자본론》을 읽을 때 이런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옛 소련 사회의 성격

만델은 옛 소련과 동구권 사회들이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보고, 《자본론》의 내용들이 “이 사회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사회들의 운동 법칙을 이해하는 데는 참고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11 만델이 그렇게 보는 이유는 자본주의를 너무 형식적으로 정의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자본론》 1권의 서문에서 만델은 “자본주의적 생산이란 일반화한 상품 생산”이라고 정의한다.12 이를 바탕으로 옛 소련이나 다른 소위 “사회주의 국가”들은 “일반화된 상품 생산을 극복한 사회”로 정의한다. 이들 사회에서는 상품이 가치대로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계획에 따라 분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13

그러나 “일반화한 상품 생산”이라는 개념을 형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학을 중심으로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사회의 일부에서 상품을 생산하던 사회는 많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상품 생산이 전 자본주의 사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상품 생산 과정이 ‘가치 법칙’의 적용을 받았다는 데 있다. 즉 자본주의에서는 다수 자본들의 시장 경쟁 과정에서 상품이 생산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상품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가치(사회적 필요노동시간)를 끊임없이 서로 비교하며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이에 따라 자본가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계 등의 불변자본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와 같은 “경쟁적 축적” 압박이 자본주의와 전 자본주의의 상품 생산 과정을 구별 짓는 핵심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의 내용을 보더라도 그가 착취와 축적이라는 동학을 핵심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옛 소련 사회도 일부 변형은 있었을지라도 마르크스가 말한 “일반화한 상품 생산” 사회의 핵심 특징이 구현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옛 소련 사회에서는 상품들의 가격이 시장 경쟁을 통해 결정되지 않았고, 관료들의 지령에 의해 결정됐다. 그럼에도 옛 소련도 가치법칙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옛 소련은 서방 자본주의와 군사적·경제적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이 때문에 소련의 지배계급은 끊임없이 서방 자본주의와 자신을 비교하며 강박적으로 축적 경쟁을 벌였다. 경쟁적 축적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이 구현된 것이다. 스탈린의 말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산업화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뒤지는 것을 뜻한다. 뒤지는 자는 패배한다.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50년이나 뒤져 있다. 우리는 10년 안에 이 격차를 메워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하든지 아니면 패배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14

이 때문에 옛 소련에서는 소비가 축적에 종속됐으며, 축적이 진행됨에 따라 이런 종속은 더욱 강화됐다. 산업 총산출량 중 소비재를 위해 투입되는 비율이 1928년에 67.2퍼센트였던 반면 1950년에는 31.2퍼센트 줄어든 상황이 이를 보여 준다. 반면 생산재를 위해 투입되는 비율은 1928년에 32.8퍼센트에서 1950년 68.8퍼센트로 늘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했던 소련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경쟁적 축적이라는 동학이 옛 소련 사회를 지배했다. 이와 같은 사회는, 토니 클리프가 정의했듯,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한 규정이다.

만델은 《자본론》 2권의 재생산 도식 관련 내용을 다루며, 소련에 친화적인 지식인들이 재생산 도식을 이용해 소련 사회를 설명한 것을 비판한다. 이 지식인들은 소련에서도 1부문(생산수단 생산 부문)이 2부문(소비재 생산 부문)보다 더 빨리 성장했고, 그래야만 경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즉 스탈린주의적 축적 경쟁을 정당화한 것이다. 이에 대해 만델은 재생산 도식은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고, 사회주의라면 이 도식이 적용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옛 소련 사회에서 실제 그런 현실이 벌어졌다는 모순에 대해서는 회피한다.15 그러나 만약 옛 소련 사회를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했다면 소련에서 불변자본이 증대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옹호할 이유도 또 그것에 대해 눈감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옛 소련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가치법칙의 수정 과정은 서구 자본주의 내에서도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진행되며 덩치가 커진 거대 기업들은 상당 규모의 생산을 계획적으로 조직한다. 그 기업들 내에서는 시장가격이나 경쟁이 존재하지 않고, 이 때문에 상당 기간 낭비적이거나 비효율적인 부분들이 존재할 수 있다. 또 자동차 기업 등 다국적 기업들의 경우 세금 부담을 낮추거나 이윤을 더 뽑아내기 위해 기업 내에서 국가 간에 이동하는 부품 등의 가격을 조작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처럼 자본주의 기업들의 덩치가 커지면서 가치법칙이 수정되는 일들을 종종 벌어지지만, 그렇다고 해도 근본에서 가치법칙과 경쟁적 축적의 동학은 유효한 것이다.

이처럼 《자본론》의 개념을 형식적이 아니라 핵심 동학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군비의 경제적 효과

만델의 약점은 전후 장기호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트로츠키(1879~1940년)는 죽기 전에 자본주의의 파국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만델이 속한 정통 트로츠키주의 경향은 이 정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전후 호황이 시작됐음에도 경기 회복을 부정했다.

그러나 토니 클리프와 마이클 키드론 등 국제사회주의 경향 논자들은 그런 교조적 태도에 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상시적 군사 경제론을 바탕으로 전후 장기 호황을 설명했다.16 이 이론은 군비가 미치는 경제적 효과에 주목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서 1960년대까지 미국의 군비는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미국은 1939년까지 무기에 거의 지출하지 않았는데(1퍼센트 이하), 1943년과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그 비율은 4.5퍼센트까지 급증했다. 그런데 전후 시기에도 이 수치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1948년 전쟁 경비는 국민총생산의 4.6퍼센트였다.(간접적인 지출까지 고려한다면 9.8퍼센트) 그리고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에 14.4퍼센트(간접 지출까지 고려하면 21.1퍼센트)에 이르렀고 그 비율은 1960년대 말까지도 9퍼센트에 달했다.17

이런 군비 지출은 모순된 효과를 냈다. 군비 지출로 인해 잉여가치의 많은 부분이 군비에 투자되면서 높은 성장률이 유지됐다. 동시에 막대한 무기 지출은 생산적인 산업에 대한 투자를 감소시켰고, 그와 더불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세가 둔화해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비생산적인 부분인 군비로 많은 잉여가치가 유출되면서 성장은 높게 유지되면서도 이윤율 하락 경향은 줄어들었던 것이 전후 장기 호황이 유지된 배경이었다. 이를 설명한 이론이 ‘상시적 군사 경제론’이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동구권 나라에서도 벌어진 일이었다.

이 효과는 1960년대까지 지속됐지만, 계속되지는 못했다. 미국이 군비에 대규모로 지출하며 형성한 시장에서 일본과 독일이 큰 혜택을 봤다. 이들은 군비 지출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으로 성장해, 미국 기업들을 압박했다. 그래서 미국도 군비를 줄이고 생산적 투자를 더 해야 했고, 이는 이윤율 하락과 1970년대의 경제 위기로 이어졌다.

상시적 군사 경제론을 비롯한 군비의 효과에 대해 만델은 이 책의 한 장을 할애해 서술한다.18 여기서 만델은 전후 시기에 군비가 수요를 창출해 자본축적에 기여했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잉여가치를 유출시켜 이윤율 하락을 저하시켰다는 효과는 부정했다. 만델은 오히려 군비가 착취율과 자본 축적율을 상승시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증가시키고 이윤율 하락을 낳았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 현실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군비 증가의 효과로 인해 미국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상당 기간 전쟁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느린 속도로 상승했다. 미국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1931~1938년에 2.0이라는 높은 수준에서, 1948~1952년에 1.61로 떨어졌지만, 1953~1958년에 1.68, 1959~1962년에 1.78, 1963~1967년에 1.85로 완만하게 상승했다. 이에 따라 이윤율도 1950년대 초반에 약 16퍼센트를 상회하던 것에서 1960년대 초반에 13~14퍼센트 가량이 됐다. 이윤율이 하락하긴 했지만 그 하락 폭도 완만했다. 게다가 세금 공제 후 이윤율은 1960년대가 1950년대만큼 높았다.19

이처럼 실제 현실은 상시적 군사 경제론이 옳다는 것이 입증됐다.

이 책에서는 간단하게 언급하지만 사실 만델은 전후 장기 호황을 콘트라티에프의 장기파동론을 이용해 설명한다. 콘트라티에프는 멘셰비키였고, 1920~1930년대 소련의 경제학자였다. 장기파동론은 자본주의가 50~60년을 주기로 장기 순환을 한다는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1780년대의 산업혁명, 1840년대의 철도, 1890년대의 자동차 발명으로 인해 경제가 성장했고, 이후 하락하며 주기를 그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많은 비판에 부딪혔다. 먼저 콘트라티에프가 규정한 파동 기간의 근거들이 너무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또 이제까지 경험적으로 자본주의가 장기적 주기를 그려 왔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그런 주기가 반복될 것이라고 볼 만한 자본주의의 내적 필연성은 없다. 만약 자본주의에 그런 내적 동학이 있다고 믿는다면 자본주의 체제가 아무리 위기에 빠지더라도 결국은 회복해 장기적으로 평형 상태로 회복하는 조화로운 운동을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콘트라티에프도 자신의 견해가 장기 균형 이론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자본주의 발전 곡선의 큰 단면의) 특성과 지속은 자본주의 힘들의 주기적 상호작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의 체널을 통해서 자본주의 발전이 흘러가게 되는 외부 조건들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콘트라티에프의 주장을 비판했다.

콘트라티에프의 장기파동론은 균형잡힌 수학적 모델로 자본주의를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설명 방식은 학술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구미가 당길 만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멘셰비키 좌파였던 니콜라이 수하노프의 주장을 더 참고할 만하다.

“콘트라티에프는 천문학자가 불변의 천체 궤도를 조사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제학을 연구한다. 자본주의의 발전, 성숙, 노쇠, 그리고 나아가서는 파멸의 가능성까지 고려하는 것이 좀더 합리적인 접근법일 것이다.”20

경제 위기의 원인

만델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지지한다. 불변자본에 대한 투자 확대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여서 이윤율을 하락시키는 경향이 있고 상쇄 요인 때문에 부침을 겪더라도 이윤율의 하락 경향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만델이 실제 공황을 설명할 때는 이윤율 저하 경향이 경제 공황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흐리는 태도를 취한다. 만델은 불비례설과 과소소비설이 이윤율 저하 경향과 동등한 수준의 공황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공황 시기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과 진정한 공황의 원인을 뒤섞는 분석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공황 시기에 과잉생산과 과소소비 현상은 나타난다. 그러나 과잉생산과 과소소비가 공황을 불러올 만큼 파괴적으로 벌어지는 이유에는 이윤율이 저하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호황의 시기에 무계획적인 생산의 확대가 벌어지면, 그 과정에서 원자재 가격과 임금의 상승 등과 함께, 더 많은 생산을 위해 기술 투자가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진다. 이는 이윤율 저하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자본가들이 투자를 줄이기 시작하면 이미 생산된 생산재들이 판매되지 않고, 투자 감소와 함께 노동자들의 고용이 줄고 임금이 감소하면 소비도 감소한다. 과잉생산과 과소소비가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무계획적으로 생산되는 자본주의에서 생산 부문들 간의 불균형이나 과잉생산·과소소비는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이윤율 저하가 근본적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이 심각한 불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또 만델은 이윤율 저하를 공황의 핵심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은 “실질 임금을 삭감해서 공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고용주들의 주장을 편드는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21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 식 주장이다. 임금 상승을 중심으로 이윤율 저하를 설명하는 리카도 학파에게는 그런 비판이 어울리겠지만, 자본의 유기적 구성 상승이 이윤율 저하로 이어진다고 분석한다면 임금 상승은 그에 비해 부차적인 요소일 수 있다. 실제로 만델이 이 글을 쓰던 1970년대에도 당시 발생한 공황에 대해 크리스 하먼 등은 임금 상승이 공황을 낳았다는 식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반박했다. 오히려 1970년대 공황을 앞두고 직·간접세를 포함한 임금의 몫은 그 이전 시기에 비해 상승한 것이 아니라 하락했다.(1955년 55.6퍼센트에서 1970년 50.2퍼센트로)22

오히려 만델은 당시 공황이 임금 상승 때문이라고 주장한 여러 논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1960년대 말에 국제적으로 “노동예비군”이 고갈돼 “실질임금의 뚜렷한 증가가 잉여가치율을 다시 하락시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23

또 만델은 이윤율 저하 공황론이 공황을 생산 영역에만 너무 한정해 설명한다고 비판한다. 물론 구체적인 공황을 분석하려면 유통이나 금융 영역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윤율 저하 경향을 공황의 핵심 원인으로 설명하는 논자들이 모두 그런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설명을 기각했다고 볼 수 없다.24

그럼에도 생산 영역에서 공황의 핵심 원인이 발생한다는 것은 충분히 강조할 만한 중요성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국가의 개입으로 불균형을 개선하거나, 소비를 부양하는 수준으로 고쳐 쓸 수 없는 체제라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한계는 자본 그것25이다.

이 외에 더 깊이 다루지는 않겠지만, 이 책에는 개념적으로 모호하거나 잘못 서술된 부분들이 있다. 만델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이론을 서술하면서 상품의 가치를 “추상적 인간노동” 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추상적 노동량”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를 보다 명료하게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26이라고 규정하지는 않는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가치로서는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에 불과하다”고 매우 명료하게 서술했다.27 이런 내용을 소개하지 않는 것은 다소 의아하다.

또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정의할 때 만델은 비물질 재화를 생산하는 것을 비생산적 노동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학교를 운영해 이윤을 내는 기업에 고용된 교사를 생산적 노동자라고 정의했던 것에 비춰 볼 때 만델 식의 정의가 마르크스의 개념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런 정의는 현실의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데 유용하지도 않다.

만델은 독점 부문의 이윤율이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 “두 개의 평균 이윤율(하나는 독점 생산 부문들에서 형성되고, 다른 하나는 비독점 생산 부문들에서 형성된다)이 일정한 시간-주기 동안 같이 공존한다.”28

그러나 “독점 이윤”이라는 생각은 이미 실증적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아르헨티나의 마르크스주의자 다바트는 미국의 독점 콘체른들이 평균 이윤 이상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수치를 제출했다. “북아메리카 경제의 가장 중요한 산업들(자동차산업, 항공우주산업, 전기산업, 식량산업, 전기 통신 공익산업, 석유 추출 산업 그리고 석탄 채광산업)은, 거의 모두 아주 소수의 독점 기업에 전적으로 통제되었는데, 이 산업들은 평균 이윤율에 근접한 중간 위치에 있게 됐다.”29

이처럼 한 국가 내에서 독점자본이 형성되거나 그 규모가 커지더라도 산업 부문 간 이윤율 경쟁과 국제적 경쟁 압박에서 자유로운 수 없다.

만델이 지닌 여러 관점들이 오늘날 한국의 좌파들도 공유하는 측면들이 많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자본론》이 진정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무기로 활용하려면 그 개념들을 형식적·기계적 또는 절충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르크스가 밝힌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을 바탕으로 《자본론》을 변혁의 무기로서 활용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진정한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MARX21

참고문헌

레닌, V I 1986, 《제국주의론》, 백산서당.
마르크스, 카를 2015a, 《자본론》 1권, 비봉출판사.
마르크스, 카를 2015b, 《자본론》 3권, 비봉출판사.
만델, 에르네스트 2019, 《마르크스 캐피탈 리딩 인트로 ─ 마르크스 자본 읽기 시작 책》, 이매진.
엥겔스, 프리드리히 2006, 《공상에서 과학으로 – 사회주의의 발전》, 범우사.
이정구 2017, “장기파동론 비판”, 《마르크스21》 21호, 2017년 7-8월호.
하먼 크리스·캘리니코스 알렉스 1995, 《마르크스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논쟁》, 풀무질.
하먼, 크리스 1995, 《마르크스주의와 공황론》, 풀무질.
하먼, 크리스 2012, 《좀비 자본주의》, 책갈피.
1 이 책을 번역한 류현 씨는 2002년에 이미 번역을 완료했지만 저작권 문제로 진전이 없다가 올해 9월에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2 하먼·캘리니코스 1995.
3 만델 2019, p83.
4 만델 2019, p80.
5 만델 2019, pp175-176.
6 마르크스는 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 [러시아와 영국·프랑스·터키 연합군이 맞붙은] 크림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등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다. 이는 마르크스도 말했듯 자본주의가 주변의 전자본주의 사회에 자본주의를 강요했기 때문에 일어난 전쟁들이었다.(하먼 2012, p120)
7 하먼 1995, p143. 이 책의 1장과 2장은 새로 번역해 실은 《마르크스21》 제12호와 제13호를 참고하라.
8 레닌 1986, p69. 하먼 2012, p126에서 재인용.
9 하먼 2012, p154에서 재인용.
10 엥겔스. 하먼 2012, p154에서 재인용.
11 만델 2019, p18.
12 만델 2019, p15.
13 만델 2019, p141.
14 하먼·캘리니코스 1995, p124에서 재인용.
15 만델 2019, pp141-146.
16 상시적 군사 경제론에 대한 설명은 이번 호에 실린 최일붕의 ‘상시적 군사 경제’를 참고하시오.
17 하먼 1995, p130.
18 만델 2019, pp164-171.
19 하먼 1995, p133.
20 하먼 1995, p220. 장기파동론과 관련해서는 하먼(1995, pp213-220)과 이정구(2017)를 참고하시오.
21 만델 2019, p246.
22 하먼 1995, p200.
23 만델의 《후기 자본주의》, 하먼 1995, p198에서 재인용.
24 하먼 1995; 하먼 2012 등을 참고하시오.
25 마르크스 2015b, p312. 강조는 마르크스 자신의 것.
26 마르크스 2015a, p48.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평균적 노동숙련도와 노동강도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시간이다.”
27 마르크스 2015b, p49. 강조는 마르크스 자신의 것.
28 만델 2019, p269.
29 하먼 1995, p244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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